전 팀장이 효율성을 중시했다면 새 팀장은 형평성을 중시했다. 즉 파레토 법칙이 전 팀장의 전략이었고, 롱테일 법칙이 새 팀장의 전략이었다. 전 팀장은 신규 점포의 경우 빠르게 자리를 잡으려면 A급 브랜드가 A급답게 매출이 나도록 올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팀에서 관리했던 백화점 한 층의 총 40개 브랜드 중에 집중하는 브랜드 수는 겨우 6개 정도였다. 전 팀장은 6개 브랜드 위주로 행사장을 운영했고 갑 티슈, 장바구니 등 백화점에서 준비한 사은품도 6개 브랜드에만 몰아줘 단골 고객을 유치하도록 했다.
당연히 나머지 34개 브랜드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낙 카리스마가 넘쳤던 팀장이라 그 누구도 쉽게 반발하지는 못했다. 신생 점포 오픈 2년 차에 전 팀장이 떠났고 이때다 싶었던 34개 브랜드 점주들은 새 팀장에게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냈다.
새 팀장은 우선 정서관리를 통해 층을 빠르게 장악하려고 했다. 그래서 모든 브랜드 점주들에게 1달 전에 매출 계획서를 받아 준비가 잘 된 브랜드에게 우선적으로 행사를 할당했다. 가뜩이나 서류 업무를 좋아하는 회사인데 실무자인 너는 더 많은 서류 업무에 시달리게 되었다.
사진=조세일보 / 그래픽 : 조혜미
인간은 관성에 저항하기 싫어하는 존재인지라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새 팀장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의 업무를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매출이 나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매출이 인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매출이 정답'인 것이다.
너도 잘 모를 때는 전 팀장이 일부 브랜드만 너무 편애해서 팀 전체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 하루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차피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니 어디 한번 물어나 보자고 용기를 냈다.
"야, 생각을 해봐라. 우리 점포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외부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단 말이지. 거기에 어렵게 입점시킨 A급 브랜드들도 있는데 업계에서 볼 때 가장 먼저 뭘 볼 것 같냐? 누구나 다 아는 유명 브랜드의 매출이 얼마나 나오는지가 궁금하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브랜드에 관심을 갖겠냐? 층에서 40개 브랜드 매출이 똑같이 매달 1억 씩 나오면 그 층은 1억짜리로 밖에 안 봐. 그런데 A급은 5억, B급은 1억, C급은 5천만 원 나온다고 치면 그 층은 5억짜리가 되는 거야."
와, 이렇게 깊은 뜻이?! 이것이 소위 말하는 '깃발 브랜드 전략'이었다. 대기업에서 부지 개발에 들어가면 주변 땅값이 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감탄 떡볶이(구 아딸 떡볶이)가 초창기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권 분석을 잘하는 대기업의 파리바게트 근처에 입점하는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전 팀장의 전략이 시의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떠나지 않고 계속 있었다 한 들 과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소외되는 브랜드가 없었을까?
새 팀장 또한 15년 차의 베테랑이었고 점주들의 불만이었던 기회는 공평하게 주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니 틀이 점점 잡혀가는 것 같았다. 상권이 확대되는 곳에 생긴 신생 점포라서 매출이 증가하는 구조였기에 새 팀장도 이런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너가 주니어 때 무림의 고수를 둘이나 모실 수 있어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만한 값을 치러야 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체계를 잡으며 팀도 안정이 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너가 기가 센 걸까, 아니면 복이 없는 걸까? 새 팀장이 온 지 1년도 안 되어 지점장 교육반으로 발령이 났다. 어째서 적응할 만하면 그렇게들 떠나버리는지. 졸지에 너는 다시 팀장 대행이 되어버렸다.
팀장들이 공들여 팀을 키웠는데 열매를 제대로 거두기도 전에 발령 나는 것을 보고 허탈감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너도 언제 어디로 발령 나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으니까. 혼란스러워하는 너의 표정을 읽었는지 하루는 지점장이 너를 조용히 불렀다.
"팀장이 빠지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다른 팀장이 오길 원하시오? 아니면 자네가 팀장이 되길 원하시오?"
독특한 말투로 물어보는 지점장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15년 차 팀장이 하던 일을 고작 3년 차 담당 보고 하라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정중하게 너는 많이 부족해서 배워야 할 것이 많기에 다른 팀장이 오면 좋겠다고 답했다.
세 번째 팀장이 올 때까지만 임시 팀장 대행으로서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세 번째 팀장은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너는 혼자서 팀을 이끌어가야 했다. 지점장과 지원실장에게 도대체 팀장은 언제 충원이 되냐며 물어봤지만, 노력 중이고 기다려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팀장 대행'이라는 요상한 직책으로 팀장에도 못 끼고 담당에도 못 끼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혼자서 팀을 관리해야 하니 휴무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이러다 혼자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점장이 다시 너를 조용히 불렀다.
(5화에 계속...)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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