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보통 오전 10시 30분에 오픈해서 오후 8시 30분에 클로징 한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이 되고자 했던 너의 점포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였다. 관리자들은 매일 오전 9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그전에 출근하고 오후 10시에 마감이 되면 그 후에 상태를 확인하고 퇴근했다.
보통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30분, 퇴근 시간은 오후 10시 30분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일 14시간은 근무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것이 칼퇴근이었다면 믿겠는가? 한 달에 한 번 있는 대청소의 날에는 오전 7시까지 출근했고, 행사가 바뀌는 날에는 자정을 넘어서 퇴근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를 하는 날에는 운동장으로 오전 6시 30분까지 출근하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남녀직원 가릴 것 없이 똑같이 새벽같이 운동장에 모였다는 사실이다. 남직원들이야 축구라도 하며 친목을 다진다고 하지만, 여직원들은 도대체 왜 왔을까?
경기 중에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쉬는 시간에는 준비해 온 어묵탕과 김밥을 챙겨주는 일종의 서포터즈 역할을 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그나마 너의 지점장은 축구할 때 여직원을 대동하지는 않았기에 남직원 중 식품 담당 막내들이 항상 간식을 챙겨가긴 했다.
너는 20대 후반의 팔팔한 총각이었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새벽에 축구하러 출근해도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마흔에 가까운, 또는 마흔이 넘은 15년 차 선배 팀장들은 축구가 결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체력도 떨어지고 가뜩이나 근무 시간도 길어서 힘든데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새벽같이 운동장에 나온다는 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다행히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중이 더 컸고 지점장은 강제적 참여를 지양한다고 선포했기에 축구를 안 좋아할 경우 참석을 안 해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만 군중 심리상 스스로 찝찝한 마음이 들어 알아서 기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중 3위가 축구, 2위가 군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망의 1위는 무엇일까?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이다.
혹시 여성 독자에게는 실례를 무릅쓰고 군대 축구 이야기를 잠깐 하려고 한다. 군대 축구는 계급이 높은 사람을 위한 접대 행위에 가깝다. 계급이 높을수록 최전방 공격수, 계급이 낮을수록 최후방 수비수가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패스는 최전방 공격수로 통한다. 가장 높은 계급의 최전방 공격수가 골대를 향해 슛을 하면 골키퍼는 슛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군대 문화의 유통에서도 축구를 하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지점장에게 가장 많은 패스가 가면 그날의 경기는 잘 풀린 것이다. 평상시 아무리 인자한 사람도 축구를 하면 본성격이 나오기 마련이다. 온화하고 친절하며 배려심 깊은 지점장이 어느 날 축구를 하다 폭탄 발언을 했다.
"지들끼리만 차고 있네!"
유독 지점장에게 가는 패스가 많지 않았던 날이었다. 모두가 지점장이 화내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그날 처음 목격하고 말았다. 쉬는 시간에 너는 따로 막내 담당들을 소집해 작전 회의를 했다. 작전명은 '모든 패스는 지점장으로 통한다!'
후반전에는 지점장의 볼 점유율이 확연히 올라갔다. 살벌했던 전반전과는 달리 화기애애하게 결국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위대해 보였던 지점장도 결국 사람이고 남자였구나. 하긴 너도 군대에서 '평상시엔 천사, 축구할 땐 악마'라는 칭호를 얻지 않았던가.
한 번은 수 십 개 점포 전체가 참여하는 축구 리그를 한 적이 있었다. 점포의 체육부장을 자처한 너는 지점장을 등에 업고 작전도 짜고 선수 기용도 하는 감독 겸 선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너는 축구를 할 때면 마치 축구 게임처럼 부대원들 한 명 한 명의 능력치를 오각형으로 분석해 작전을 짜곤 했었다.
너의 점포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작전을 짜기 쉬웠다. 그래도 워낙 축구를 잘하는 점포들이 많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결국 너의 점포는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축구를 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고 4강 신화까지 이룩했던 그 시절이 너에겐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돌아보면 무식하고 순수했기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지내올 수 있었다. 3S 정책 중에 왜 스포츠가 포함되는지 너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지나간 기억은 추억으로 미화되지만, 만일 지금도 그때처럼 살라고 한다면 너는 단칼에 거절할 것이다.
하루에 기본 14시간 근무에 이것저것 이벤트까지 하면 17시간 근무도 우스웠던 시절이다. 대학교 동아리 모임, 친구 모임, 군대 동기 모임 등에 참석한다는 건 너에겐 사치였다. 정신없이 바빴기에, 생각할 시간이 없었기에 오히려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놈의 축구 덕분에? 그놈의 축구 때문에!
(7화에 계속...)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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