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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l 11. 2024

82년생 직장인 #8

※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설정은 모두 허구이며 특정 인물이나 단체, 상황과는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너는 경험이 많은 선배 팀장들에게 조언을 구할까도 생각했지만, 너의 팀에서 일어난 일이라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기에 너는 혼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며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 했지만, 따듯한 물이 머리에 닿자 오히려 고민이 더 불어나는 것 같았다.


욕실을 나오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지만, 오늘은 별일 없었냐는 엄마의 질문에 내 안색이 굳어져버렸다. 엄마는 재빨리 새빨간 오미자 주스에 얼음을 몇 개 넣어 식탁 위에 놓더니 여기 와서 시원하게 한 잔 하라고 권했다. 꼼짝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런 엄마의 지혜를 대단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서울 때도 있었다.


"엄마, 실은..."


오늘 직장에서 일어난 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너의 심정을 쏟아놓았다. 컵 안에 든 얼음이 녹듯 애간장도 녹아내렸으면 했지만, 컵 밖에 맺힌 물방울처럼 너의 눈에도 이슬이 맺히는 듯했다. 엄마도 사태의 심각성을 듣고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엄마는 방에서 책을 들고 나왔다.


"내가 오늘 읽고 묵상한 내용인데 이 상황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구나."


엄마는 성경책을 펼쳐서 페이지를 막 넘기더니 어느 부분을 가리켰다.

1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많은 백성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앉아서 그들을 가르치실 때에
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4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7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9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다.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11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 요한복음 8:1~11, 새번역


성경과는 다른 사건이긴 했지만, 너가 처한 상황의 본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끌수록 일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너는 결단했다. 그래, 내일 바로 점주 간담회를 열어서 결판을 내자! 엄마에게 털어놓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아침 공지 시간에 오후에 강의장에서 점주 간담회를 할 예정이니 한 분도 빠짐없이 모여달라고 말했다. 마침 이달에 있을 프로모션과 관련하여 점주들과 논의할 내용도 있었기에 점주들은 으레 하는 간담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사고를 저지른 배옥자 점주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여론을 움직이는 점주 회장 후라지크 점주의 눈빛은 그날따라 더 번뜩이는 듯했다. 그동안 너의 팀을 맡았던 기존의 팀장들과 다르게 너는 매월 한 번씩 간담회를 열어서 전체 점주들과 공식적으로 소통하는 장을 만들었다. 이때 전체의 의견도 받아보고 또 너의 생각도 전달하면서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협의하여 결정할 수 있었다.


간담회는 이렇게 구성했다.

1.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감동적이거나 재미있는 동영상을 5분 정도 시청한다.
2. 팀 전체의 실적을 공유하고 우수 브랜드를 축하하는 시간을 갖는다.
3. 다음 달 팀 전체 및 브랜드별 목표, 예정된 프로모션에 대해 상세히 안내한다.
4. 목표 달성을 위한 나의 전략을 공유하고 Q&A 시간을 통해 보완한다.
5. 그 외 공지 사항을 공유하고 다 함께 팀구호를 외친 후 해산한다.


오전 내내 너는 심혈을 기울여 간담회 자료를 준비했다. 식품관에서 점주들에게 돌릴 비타민 음료도 구입했다. 마침내 점주 간담회 시간이 되었고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첫 순서로 언제나 그랬듯 동영상을 틀었다.


바로 어제 엄마와 나누었던 요한복음의 내용으로 구성된 짧은 영상이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영상을 시청했다. 간담회는 준비한 순서대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어느덧 마지막 순서가 돌아왔다. 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어제 우리 층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선 이 일에 책임을 느끼는 당사자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배옥자 점주님,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배옥자 점주와는 사전에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너가 나섰다.


"배옥자 점주님은 이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설명하셨고 사죄를 하셨습니다. 저 역시 이번 일은 공적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옥자 점주님이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겪으신 안타까운 사건을 아실 겁니다. 사적으로는 고통 가운데서 벌어진 실수도 한편으론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 간담회 시작할 때 다 같이 봤던 영상 기억하시죠? 예수는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지금부터 투표를 하겠습니다."


너는 모두에게 눈을 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배옥자 점주의 처벌을 원한다면 조용히 손을 들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손을 내리고 있어 달라고 했다. 숨 죽인 채 제발 손을 들지 말아 달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9화에 계속...)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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