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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안방 아랫목에서 임영웅콘서트

시간이 벌써 흘러

by 루씨리Rhee Feb 01. 2025

#명절 #시간 #친정 #콘서트


이번엔 친정이다. 항상 설 당일 저녁에 찾아뵙는 게 나는 결혼하고 20년 차인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설 전날이나 혹은 설 당일 새벽에 와서 친정 부모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내겐 있다. 처음에는 결혼하고 시댁 챙긴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서는 홀로 되신 시어머니 신경 쓴다고 명절 당일에 시댁을 찾는 게 이젠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들과 남편과 미리 사둔 사과상자를 들고 친정 현관 벨을 누른다. "오~ 너희들이니~?" 굵고 인자한 친정 아빠 목소리이다. 이 목소리로 약 70킬로 가까이 나가던 나의 고3시절 '공주님'이라 부르시며 언제나 사랑해 주시던 자상한 아빠다. 아빠의 밝고 환한 미소를 맞이하며 거실로 들어서니, 엄마는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셨다. 우리가 올 시간에 맞춰 립스틱을 새로 바르셨음이 틀림없다. 엄마는 나 어릴 때도 아빠의 퇴근 시간 가까워오면 립스틱을 새로 바르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기고, 저녁을 바삐 준비하곤 했으니까. 일흔이 넘어도 엄마는 여전히 예쁘다.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향한다. 엄마는 설 당일이라, 해외 사는 남동생네가 영상 통화를 해 왔다고 말씀하신다. 남동생네는 이번에 둘째 낳은 지 아직 100일이 안 됐다. 그 100일도 안 된 아이가 어쩜 그렇게 인물이 좋으냐고 엄마는 혀를 내두르신다. 큰 조카는 이제 4돌이 다되어가는데, 큰 조카아이를 데리고 사돈네는 스키를 타러 갔는데, 그 조그만 아이가 스키를 너무 잘 탄단다. 아무래도 큰 조카는 아이는 머리가 너무 영특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엄마는 남동생네 조카들 이야기면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이럴때 서운하냐고 물어올 독자분이 계실 것 같아서 미리 말을 하자면, 우리 남편은 위로 누나만 셋인데, 시어머니가 너무 우리애들만 예뻐해서, 시누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으며 아이들을 키워온 터라 미리 많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말에 장단도 잘 맞춘다. "작은애가 그렇게나 인물이 좋아? 큰애는 영특한게 보이잖아?!"


엄마는 참 나물을 대량으로 싸게 구매하셨나 보다. 참 나물이 너무 맛있더라. 우리 이거 데쳐먹자. 너희 친할머니는 내가 시골에 내려가면 그때부터 항상 음식을 준비하곤 하셨어. "엄마, 그 많은 나물을 어떻게 이 작은 냄비에 다 넣으려고 그래요?" 내가 보기엔 너무 작은 냄비에 물을 끓이며, 그 많은 참나물이 들어가기가 영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얘 이거 다 들어가. 이러면서 퐁당 넣는데, 정말 엄마 말대로 그 많은 나물이 작은 냄비에 쏙 다 들어간다. "내가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명절인데, 할머니가 마침 너무 작은 냄비에 물을 끓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어머니! 냄비가 너무 작잖아요!!'" 이러면서 잘못을 꼬집듯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러자, 나의 친할머니는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설명 없이, 한 포대 가까이 되는 씻어둔 나물을 냄비에 한꺼번에 넣으며 의기양양하게 어린 엄마를 쳐다봤다고 했다. "너네 할머니가 아무 설명도 없이 무뚝뚝하게 했지만. 나도 왜 그렇게 버릇없이 굴었는지." 엄마의 고해성사 아닌 고해성사가 저녁 준비하는 우리 둘 사이에 흘러나와 팔팔 끓는 떡국 속으로 사라져 없어진다.


막내시누네서 올라와 바로 친정으로 넘어간 터라 아이들은 피곤하고 배가 고팠는지, 그 많은 떡국을 다 비우고 숨을 씩씩 내 쉰다. 거실의 커다란 대형 스크린으로는 TV조선에서 방영해 주는 임영웅 콘서트가 한창인데, 엄마는 귀엽게 목화솜이불을 꺼내오더니, "얘들아 이리 와 여기 전기장판도 틀어놔서 너무 따뜻해." 우리 아이들을 이불 밑으로 초대한다. 아빠는 자신의 친구 부부 이야길 하시는데, 아저씨는 나훈아를 아주머니는 임영웅을 좋아해서 서로 콘서트 쫓아다니는 이야길 하신다. 나는 한마디 보탠다. "엄마나 나는 연예인을 쫓아다녀본 적이 없어." 진짜 그랬다. 엄마도 어떤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나도 누구 연예인에 빠져서 쫓아다녀본 적이 없다. 대형 스크린 임영웅 콘서트 앞에서 우리 큰애와 작은애는 떡국으로 퉁퉁 불는 배를 끌러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나는 엄마 아빠한테 "임영웅은 원래 하늘색이야. 민주당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라며 엄마 아빠의 잘못된 대화도 바로 잡아드린다.


시간이란 묘하다. 추운 겨울날 대학교 기말고사 기간 중 유독 어려운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 남동생과 사과 깎아먹으며 깔깔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나는 이렇게 장성한 아이들을 두었나. TV앞에서 사과 깎아먹는 이 장면은 똑같은것 같은데, 나에겐 남편과 아이들 둘이 늘었구나.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깨워 다시 집으로 향할 채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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