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귤 Aug 01. 2022

별 하나에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컴컴한 새벽 3시의 설악산.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감춰진 고요한 어둠의 시간, 별이라는 존재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대신하여 생명을 증명한다. 너는 어느 곳에서 온 빛이니, 먼 우주 수만 광년을 지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가온 빛을 담기 위해 한껏 커다래진 동공. 그 시신경 끝으로 닿은 별빛 하나에 나는 추억을 담고, 다른 별 하나에 환희를 담으며, 또 다른 별 하나에 경의를 담는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설악산. 평소보다 애써야 하는 산행이지만 반년마다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는 도시의 네온사인, 스마트폰 화면, 인공 빛에 지친 마음에게 자연의 별빛을 다시 채우기 위함이다. 산행은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이것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것을 다 해낸 성취를 느낀다.


온몸 가득 쏟아지는 별들의 응원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공간은 헤드렌턴이 만드는 좌우 반경 30cm 남짓한 크기이다. 좁은 시야 속에서 나의 숨소리와 땀방울의 촉각이 두드러진다. 작은 걸음을 이어갈 때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돌멩이의 감각을 느끼며 걷다 보니 내가 볼 수 있는 땅의 크기가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넓어짐을 알아차린다. 평지에서는 닭이 새벽을 울린다면 산에서는 까마귀가 동이 트는 것을 알린다. 그 녀석의 목청이 서울의 산 까마귀보다 억세고 늠름하다. 어둠보다 빛의 면적이 넓어지고 곧이어 색을 가진 새벽이 찾아든다. 어젯밤 별들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나는 오늘의 태양과 구름들. 해의 색을 칠한 불그스름한 공기에서는 생명의 내음이 난다. 그것은 봄의 벚꽃이 지난 자리에 여름의 장미가 피어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가을의 단풍이 무르익고 그것이 스러지면 눈꽃이 찾아드는 것과 같은 연속적 황홀이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게 된다.  

뾰족이 솟은 산맥 곳곳 숨은 수많은 생명의 존재들을.



겨울이 빠르게 찾아오는 10월의 설악산은 능선 사이사이로 수많은 색이 아우성친다. 색뿐인가, 생명도 요동친다.


땅 속에서는 살아 숨 쉬는 흙 속 생명의 아우성.  "아이 추워" 호호하고 내뿜는 입김이 그대로 땅 위로 얼어 올라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서리 밭이라고 한단다. 신비로운 단어이다. 땅 위에서는 빠릿빠릿한 다람쥐가 겨우내 먹기 위한 도토리를 모으다 흘린 땀 방울이 흘러내리다가 그대로 얼어 그 모양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버린다. 내 속눈썹에도 구레나룻에도 앞머리에도 내가 내뿜는 숨이 얼어 작은 고드름을 만든다. 내가 살아있음을 그들이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급격하게 차가워진 날씨에 나무는 급히 이불을 홍색으로 덮어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쓴다. 어떤 나무는 바람이 어찌나 세었는지 바람 모양 그대로 나뭇잎 머리채가 잡혀있다. 그 모양이 신기해서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도 그 나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들 그대로를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 나무의 지혜에 감탄한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걸친 오뉴월의 설악산은 등산을 하기에 가장 적당하다.  계절에 자연은 인간이 설명할  있는 모든 초록색을 너머 초록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색을 따라 걷다 보면 온갖 초록이 내 몸을 통과하며 녹음과 신록이 주는 싱그러운 황홀감을 마음껏 느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를 만난다. 높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것과 다르게 뽀얗고 순수한 솜털을 가진 산솜다리. 이 꽃은 연약해 보이지만 벼랑 끝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녀석이다. 겉모습만 보고 약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인간의 편협한 본성을 자연은 이렇게 증명한다. 추워서 자라난 걸까 꽃잎에 돋은 솜털을 살짝 건드려보며 생명의 애틋함을 느낀다. 산솜다리의 꽃말은 "소중한 추억"이다. 살아가는 순간의 어떤 기억은 솜털처럼 부서지기 쉽다. 하지만 이 꽃을 만난 시간은 그것이 가진 생명력과 같이 내 마음속에 강하게 뿌리내린다.



가장 적당한 것이 또 있다. 봄과 여름의 경계선에는 천불동 계곡에 발을 담그기가 가장 적당하다. 하산 후 물 맑은 계곡에 퉁퉁 부은 발을 담그면 달아오른 피로가 풀리며 고된 산행의 여독을 풀어준다. 그 시간이 되면 인간이 문명아래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말과 단어는 표현의 한계에 닿아버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산은 그냥 올라가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말은 한 생명의 삶이 탄생과 죽음이 아니냐는 말과 같다고.


살아서 살아내며 죽어가는 동안 우리는 인생에 별 같은 순간을 맞이하고 가끔은 넘어지다가 다시 작은 빛을 보고 일어난다. 수많은 생명에 둘러싸여 살아가며 그것이 가진 생명의 크기가 모두 동등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게 영향을 주며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 산은 그런 공간, 그런 경험이다.


인간 다람쥐를 꿈꾸며




이전 05화 한라의 초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