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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도(尋牛圖)

by 걷고 Aug 02. 2023

  경기 둘레길을 2022년 5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2023년 7월 22일에 끝냈다. 주로 토요일에 걸었고, 860km에 달하는 이 길을 44회로 나눠 걸었다. 총 60개 코스를 한 번에 한 코스 또는 두 코스, 심한 날은 세 코스를 걷기도 했다. 혼자 걸은 것이 아니고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걸었다. 끝난 지 불과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꽤 오래 시간이 지난 느낌이 든다. 지난주 토요일에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매주 토요일에 경기 둘레길을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가까운 친구들이라도 매주 아침 8시경에 만나 밤늦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자주 만나서 함께 걷고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고 싶다. 서울 둘레길을 서둘러 시작한 이유도 아마 경기 둘레길이 끝난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각 코스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은 패스포트(스탬프 북)를 관련 기관에 우편으로 발송했고, 이틀 전 문자를 받았다. “경기 둘레길 완보를 축하드립니다. 완보인증 자료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경기 둘레길 완보인증서 제작이 진행될 예정이며 경기도청 인증 후, 완보기념품과 함께 10월경 작성해 주신 주소로 발송될 예정입니다.” 패스포트를 발송하며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숙제 한 가지가 남아있다. 경기 둘레길을 완보한 느낌을 글로 정리하는 일이다. 근데 이 글을 쓰기가 왜 이렇게 싫은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매주 길을 걸은 후 후기를 써왔다. 44회를 걸었으니 최소한 44편의 글을 썼다. 후기를 쓸 때는 즐겁게 썼다. 근데 마지막 후기를 쓰는 일은 숙제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뭔가를 마무리하며 후련하고 몸도 마음도 가벼울 텐데 왜 글쓰기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딴짓을 하려는 마음을 억지로 통제하며 쓰고 있다. 누가 쓰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써야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마지막 후기를 꼭 써야만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도 써야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지막 후기를 쓴다는 것이 바로 경기 둘레길과 헤어진다는 것이기에 헤어지기 싫어서 자꾸 멈칫거리고 있는 것 같다.      


 세월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정이 쌓이듯 길 역시 오래 걸으면 정이 든다. 정은 쉽게 떼어낼 수 없나 보다. 이 길을 걷는 내내 배낭에는 빨간색과 연두색 경기둘레길 리본이 달려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 리본을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배낭에 달고 다녔다. 지난주 토요일에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이 리본을 떼어내는데 한참 머뭇거렸다. 떼어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차마 떼어낼 수가 없었지만,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경기 둘레길 리본을 달고 걷는 것은 두 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떼어 낸 후 책상 위 유리판 아래에 늘어뜨려 놓았다. 이 글을 쓰며 리본을 다시 배낭에 달고 사진을 찍었다. 무슨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양 정성 들여 사진을 찍으며 이제 정말 경기 둘레길과 헤어질 시간임을 자신에게 강하게 인식시켜 준다. 사진 찍은 후 다시 리본을 떼어내어 유리판에 늘어뜨려 놓았다. 이 리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당분간 그대로 둘 생각이다.      


 걷기 전 왜 이 길을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걷는가에 대한 이유를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었다. 별 내용은 없다. 이 길을 걷고 싶은 마음, 혼자 걸으며 포기할 것 같아서 동호회 회원들 힘을 빌려서라도 완보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간 쌓아놓은 자신의 틀을 부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걷고 싶었기에 걸었고 결국 완보했다.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원들을 꼬드겨서 함께 걸었다. 혼자 걸었다면 예상대로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 덕분에 이 길을 완보할 수 있었다. 길을 헤맬 때, 또는 힘들어서 그만 걷고 싶을 때에도 길동무들이 길을 안내해 주었고, 격려해 준 덕분에 완보할 수 있었다. 길 안내자를 자처한 덕분에 중도포기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쉽게 약속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한 약속은 그것도 공식적인 약속이라면 더욱더 어기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강박적 성격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마지막 목표인 자신의 틀을 깨는 것은 목표 달성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민낯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민낯을 확인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다소 괴롭고 힘들고 때로는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감정이 자신의 틀을 깨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의 틀을 조금은 부수고 가면을 하나 벗어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성격이다. 모난 성격이고, 타인의 통제를 무지 싫어하고, 자신의 방식을 따르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사람이다. 그다지 따뜻하거나 친절한 사람도 아니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까다로운 사람이다. 사람과 상황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지니고 자신의 방식으로 왜곡된 해석을 하고 혼자 그 해석 속에 빠져 헤매기도 한다. 독립적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불편한 사람에 대해서는 험담과 비난도 하며, 자신에 대한 험담과 비난은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 외에도 나의 민낯은 몇 백가지는 될 것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보는 시각이 다르니 사람 수만큼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 길을 걸으며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꽤 오랜 시간 이 길을 걸으며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와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 상황 덕분에 단단해진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사람과 상황으로 인해 마음속 동요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견디고 버티는 힘이 조금은 강해져서 크게 흔들리지 않고 할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의 틀이 모두 허물어지면 가능할 것이다. 최근에 찾은 내가 걷는 이유는 지금의 ‘나’라고 착각하는 자신에서 벗어나 ‘참 자기‘가 되기 위해서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나 자신에게 있다. 타인에 대한 불평, 상황에 대한 불만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상(我相)’과 ‘욕심’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참 나’를 만날 때까지 계속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민낯을 보았고, 마음 근육이 조금은 단단해졌고, 고통의 원인이 ‘가아(假我)’와 ‘욕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참 나’와 가까워진 것이다. ‘참 나’를 만날 때까지, 또는 ‘참 나’가 될 때까지 계속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마치 불화(佛畵)인 심우도(尋牛圖)에 나오는 동자처럼.      


 아무런 사고 없이 완보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다행스럽고 기쁘다. 44회를 걷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꾸준히 걷는 사람도 있었고, 한두 번 걷고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움을 준 많을 길동무들 얼굴도 떠오른다. 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오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총무 업무와 차량 예약 및 정산을 도와준 비단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기억나는 얼굴들이 제법 많다.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스위치님, 에단호크님, 피치님, 도니님, 꽃가루님, 히란야님, 엑소님, 어니님, 주산님, 주니유니님, 당근조아님, 길에서 만난 길동무들은 그 길을 걷거나 지날 때마다 또는 후기를 읽거나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날 것이다. 좋은 추억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에단호크님이 9월부터 경기둘레길을 다시 진행한다는 것도 이 길을 완보하지 못한 길동무들에게 기쁜 소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에단호크님과 함께 걸으며 좋은 추억도 쌓고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제 숙제가 끝났다. 후련한가? 아니다. 시원한가? 아니다. 그냥 덤덤하다. 무엇보다 토요일 아침 일찍 기상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챙겨주고 도시락과 과일을 준비해 준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내가 토요일에는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 하나도 내게는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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