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오후.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식탁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다 창문 밖을 내려다본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도로는 도로 양쪽 귀퉁이에 주차된 차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일터로 학교로 각자의 자리로 들어가 문을 닫고 바쁘게 앉아 있을 시간이다. 시작과 함께 단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시간이 내 앞에서 깜빡 멈춘 건 아닐까 했지만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움직이는 나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나의 오후는 그대로 멈춰 선다. 늦가을 추위를 의심하게 하는 눈부신 햇살도 바람을 불러 세운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집 안과 밖이 정지한 듯한 풍경 속으로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창문 밖으로 젊은 여자 셋이 몸을 움츠리고 걸어간다. 나는 그 여자들이 가는 길을 눈으로 좇는다. 가만히 앉아 노래로 공간을 채울 시간조차 없이 돌아다니던 시절이 떠오른다. 기억 속의 어린 나는 늘 혼자 길 위에 있다. 그 시절의 내가 돌아갈 집도 없이 거리에서 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내 어깨 위로 올라오는 손길에 뒤돌아 보던 일이 많았던 날들을 그려보았다.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 있어도 아무리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있어도 나는 어김없이 나를 부르는 사람을 향해 뒤돌아 대답했다. 나의 뒷모습을 알아보고 나를 부르던 사람들은 이제 어떤 이름을 부르며 누구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하고 있을까.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겨우 부르던 서로의 이름은 가는 시간을 붙잡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너의 목소리에 멈춰 선 그 길 위에서 여기 한 아파트 거실의 식탁의자까지 10년이 흘렀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내 이름만 달라진 것 같다.
의자 위에 세우고 있던 무릎을 내려놓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사람의 사진과 프로필이 나온다. 모니터 안을 채우고 있는 내 이름을 차례차례 유심히 살펴보고 있자니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뒤를 한 번 돌아본다. 지금 여기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모니터 속에는 내가 없다. 대신 앞으로 나와 같은 이름으로 살게 될 수많은 아기들의 사진이 보인다.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아기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나와 같은 이름의 신부 혹은 신랑의 결혼사진도 간간히 보인다. 사람으로 사는 동안 어느 누가 보아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새로운 시작은 아이의 탄생과 결혼인 모양이다.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보이는 사진들이 행복해서 안심이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름으로 살며 행복했던 순간들이 모두 나의 것인 듯 착각하게 되는 이 순간, 사진으로조차 남을 수 없는 일상이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되어 거실을 채운다. 너의 목소리가 떠나버린 내 이름이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노래를 꺼버린다. 이름 검색은 함께 꿈꾸던 일상을 따로 이루게 된 사람들이 서로에게 침묵과 부재로 축하와 응원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걸어가버린 어제와 우리 등 뒤로 성실히 다가오는 내일을 위한 오늘의 기도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벌써 어린이집으로 딸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주섬주섬 식탁 위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었더니 찬바람이 집 안으로 들이친다. 그 사이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세히 보니 나뭇가지를 흔드는 건 바람이 아닌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