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류연재 09화

결벽증 있는 남자

This is not a true story.

by 준혜이

내 남편이다. 키가 크고, 코도 오똑한데다가 날씬하기까지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평생 그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싶은 마음 하나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이 남자가 나에게 청혼하게 만들었다.

남편에게는 심각한 결벽증이 있다. 이 남자와 같이 사는 게 쉽지 않을꺼라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 이해하고 사랑하리라는 처음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하고 끝도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하루는 이 남자의 깔끔함에 대한 집착을 안쓰러워하며 이해하다가 다음날은 도대체 남편이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걸까, 이 집에서 내 존재는 멀리 치워버리고 싶은 쓰레기인가, 자존심이 상해서 울기도 했다. 남편은 속상해하는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도 괴로워하고 있다는게 느껴져 남편과 쉽게 화해하고 더이상 그를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철저한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다. 더럽히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 이것은 인간적인 행동과 습관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라고 불필요한 감정을 개입시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지 말자는 게 이 역할분담의 요지였다. 예를 들면 가위를 쓰고나서
제 자리에 갖다놓지 않는 나를 탓하면서 청소하면 반칙이 되는 것이다. 나는 더럽히는 사람이니까.

우리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의 결벽증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더럽히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남은 물론 아기가 없을 때는 남편의 습관을 존중하던 내가 예전같지 않으니 남편은 점점 더 불안해하고 예민해져만 갔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집 크기를 줄이고 두 개의 집을 갖기로 했다. 쉽게 말하면 남편이 나와 우리딸의 옆집에 살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살림의 소유를 분명하게 구분했다. 남편의 집에는 남편의 물건만 나와 딸의 집에는 우리 둘의 물건만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집을 나누고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다. 남편은 자신이 주인이 아닌 집에서 손님처럼 머물다 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며칠을 그렇게 머물 때도 있고 하루만 있다가 옆 집으로 건너갈 때도 있다. 물론 나와 우리 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집이란 자신이 일정한 공간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기분을 주는 곳이어야만 한다는 걸 그 때야 비로소 알았다.

이런 식의 결혼생활은 이혼의 전단계인 별거가 아니냐며 부모님들은 걱정을 하시고, 화를 내시다가
이젠 받아들이시기로 하신 것 같다. 가정을 한 집에서 꾸릴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정이 한 집에서 꾸려질 수 없는 사정도 있다. 한 집에서 살지 못하는 우리가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거나 한 아이의 부모이기를 포기하려는게 아니니까 말이다. 이건 한 집에 공존하기 힘든 습관이 사랑에 빠진 결과일 뿐이다.

두 사람이 뭉쳐 살기 위해 싸우며 노력하기보다
둘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만들면서 살아보겠다는 우리가 아직까지는 현명해보인다.

아이가 더 크면 우리의 특별한 가정을 어떻게 이해시켜야할 지는 고민이다. 우리 둘을 꼭 닮은 아이라면 이대로 행복하게 자라 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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