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애들은 집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나 하고 앉아 있고 싶어 하므로. 그럴 순 없어. 우린 다 같이 H마트에라도 다녀온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각종 채소와 과일을 사들이는데 몰두해 채소와 과일에도 국적이 있지, 재미로 확인한다. 케이 그레이프, 차이니즈 브로콜리, 차이니즈 에그플랜트, 베트나미즈 망고. 앗, 청경채는 영어로 상하이 복 초이. 상하이의 위상을 이렇게 다시 한번, 과연, 깨달으며 망고 사진을 찍는다. 이따가 소년 축구 경기에 가서 하한테 보여 줄 것이다. 혹시 이렇게 내가 하를 베트남 이민자라는 틀에만 가둔 채로 대하면 하가 불쾌할까. 하지만 오늘 낮에 H마트에서 네 생각이 났어, 이런 말로 시작될 얘기에도 남몰래 날을 세워버리는 그 마음까지 내 탓은 아니겠지. 그리고 궁금해. 베트남 망고가 원래 비싼 거야, 아니면 H마트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거야.
실내 축구장 응원석에 앉아 있는 내게 하가 베트남 음력설 전통이라며 쇼핑백을 건넨다. 그 안에다 고개를 처박고 고맙다 말하는 내 뒤통수 위로 음식에 관한, 돼지고기, 녹두가 들어간 찰밥과 장아찌, 설명이 쏟아진다. 그런데 있잖아, 내가 오늘 낮에 H마트에 갔다 왔는데. 그린 망고. 사진을 슬쩍 보더니 하가 외친다. 과육이 하얗고 아삭하면서 신맛이 나는 망고. 후이가 액젓에 설탕을 섞어 그린 망고에 찍어 먹길 즐긴다고 그래서 옆에 앉아있던 중학생이 Ewwwwww 한다. 그린 망고가 한국에서 나는 과일이었다면 개망고라 불렸을까. 개살구, 개나리, 개새끼, 개떡, 개소리 같이.
냉장고를 열어 지난달 남편과 둘이 부엌을 붉은 난장판으로 만들어가며 담은 김치를 꺼낸다. 한 손을 넣으면 손목까지 잠길 만한 깊이의 반투명 플라스틱 용기에다 김치를 나눠 담는다. 하, 네가 준 찰밥이랑 피클이 너무 맛있어서 나도 너한테 뭘 주고 싶게 만들었어,라고 떠드는 날 상상한다. 얼마 전 아는 언니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밤막걸리가 맛있다고 알려줘, 바밤바 맛이야, 란 말을 들은 이후 당장 맛보고 싶어 안달하다 드디어 H마트에서 사 온 밤막걸리 한 병도 꺼낸다. 김치와 막걸리를 쇼핑백에 넣은 다음 통째로 내 가방 속에다 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