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류연재 04화

막차 탄 여자

by 준혜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긴긴 수다 끝에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자는 친구들과 나누었던 얘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시들어가는 우리 청춘 꽃의 향기는 지독하다면서 술에 취해 여자의 머리칼에 고개를 파묻고 킁킁거리던 친구가 집에 잘 들어가고 있을까,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어디야? 버스 탔어? 난 지금 앉아서 가고 있어 ㅋㅋ 우리 언제 또 만나? ㅋㅋ 집에 잘 들어가~ 너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이제 손을 잡는 것만으로,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어서 가끔은 슬퍼진다는 또 다른 친구의 얘기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술을 따라주었다. 그래도 우리는 또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겠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친구가 오늘 밤 울지 않고 잠을 잘 잘 수 있을지 마음이 쓰여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잘 자! 난 이제 집에 거의 다 왔어. 다음에 만날 땐 그냥 너네 집 가서 자야겠어 ㅋㅋ 너 까만 머리도 잘 어울리더라 ㅋㅋ]

친구들에게서 답문이 왔다.

[내가 좀 어려 보이긴 하지- 좋겠다. 난 자리 없어서 서 있는데 -_- 너도 집에 잘 들어가 너만 안 바쁘면
난 매일매일 널 만날 수 있어!!!!!!!!]

[고마워 진짜 다음엔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내일 전화할게 집에 조심히 들어가고]

여자는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온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끝까지 사랑할 수 없었던 한 사람에게 술기운을 빌어 전화를 해볼까 말까 하다가 그땐 우리 어려서 서로 오래도록 바라만 보고 있었지,
그래서 고마워 그래서 자꾸 생각나나 봐. 혼잣말을 한다.

여자가 버스에서 내리고 뒤를 돌아보자, 버스는 벌써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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