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류연재 13화

말이 없는 남자

by 준혜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병, 두 병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 남자는 말이 없습니다. 빈 맥주병에 어둠을 담아 스스로에게 하루를 선물하는 이 남자는 말 없이 세상을 소리내어 읽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언어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같은 언어를 갖고 있다해도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긴 하지만요.

이 세상이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 갈래갈래 찢겨있다는 걸 우리는 날이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되겠지요. 혹시 우리가 이 세상을 혹독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남자의 부모님은 이 남자가 하나의 언어를 완벽히 습득하기 전에 그의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혼재하는 세상에서 어설픈 두 개의 언어를 가진 채 살아가는 이방인, 그는 어느 한 세상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의 언어로 한 문장에 존재할 수 없는
그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 남자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차이를 억지로 이해하려들기보다 우리의 다름 자체를 그의 세계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할테니까요. 그래서 그의 곁에는 가족을 대신 할 친구들이 많이 있는가봅니다.

이 남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품고 살아갑니다. 사랑도 이별도 그에게는 말이 필요없는 사랑, 이별이겠지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의 사랑을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남자는 말이 없습니다. 빈 맥주병에 밤하늘을 담고
담배연기로 구름을 빚는 이 남자는 목소리없이 세상을 노래하는 이방인 입니다.

keyword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