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류연재 12화

동물원 산책하는 여자

by 준혜이

속았다. 부동산 아저씨는 나에게 이 집이 동물원이랑 가까워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산책이나 해야지, 하고 걷다 보면 동물원 앞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했다. 알고 보니 여기서 동물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자가용이 있으면 모를까, 우리 집에서 30분 안에 동물원에 도착할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뿐이었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은 동물원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장연설을 하셨다. 나는 단지 우리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을 혹시 알고 계시냐고 물었을 뿐인데.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해 어수선한 집에 혼자 있기가 불편해 나는 버스를 타고 번화가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편안하고 외딴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커피숍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커피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늘었다, 줄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 입술에 발린 립스틱은 이제 거의 다 지워지고 머리를 쓸어 올리는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몇 올 떨어져 내린다.

눈, 코, 입, 귀로 만들어 볼 수 있는 모든 얼굴이 동물원에 있다. 창조자의 유머와 배려가 적절히 섞여있는 동물들의 모습에 웃다가 내 얼굴이 낙타를 닮은 것 같아 가방 속에 있던 손거울을 서둘러 꺼내 들었다. 동물원은 유난히 특이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들고 있던 손거울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내가 어떻게 사람일까.

구경거리는 되고 싶지 않고 부러움의 대상은 되고 싶었다. 이건 커피 중독보다 심각한 타인의 시선 중독. 커피숍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누가누가 더 자신의 본래 모습과 다르게 꾸미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삶을 이끄는가 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 사람은 동물원에 가서 그동안 써왔던 사람 가면을 벗고 하마로 남은 일생을 살아가는,
벌인 지 해방인지 모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게임.

그래서 낙타가 사랑한 너는 기린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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