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여름 다니던 회사 업무가 너무 많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직한 지 6개월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매일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 근무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결혼 전이라 사직에 대해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죽마고우와 10일 정도 태국과 캄보디아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8월 중순에 떠나는 여행이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우리나라도 더운 여름인데, 방콕 공항에 도착하니 완전 땀으로 목욕하는 수준이었다. 방콕 왕궁도 보고, 마사지도 받았다. 어느 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친구가 신용카드로 계산하는데 먹통이었다. 다음 날 쓸 돈이 없어 나에게 얼마 정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냥 빌려주면 되는데, 나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20대부터 가지고 있었다. 큰돈도 아니고 정말 친한 친구에게 돈 10만 원 정도였는데, 빌려주지 않았다. 친구가 당장 급해서 빌린 후 금방 준다고 했는데도 원칙만 따졌다. 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숙소도 따로 걸어왔다.
방에서도 말도 없이 조용했다. 피곤해서 먼저 잔다고 하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지만, 친구가 신경이 쓰여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미안하다고 먼저 이야기하고, 기억이 맞는지 모르지만,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건넸다. 친구의 표정은 그래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전날보다 좀 풀렸는지 같이 다녔다.
귀국하는 길에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그때 네가 그렇게 나올지 몰랐다고 하면서 큰 상처 받았다고. 아무리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황이 급박하고, 카드만 풀리면 바로 돌려줄 수 있는 돈인데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 하면서 관계를 끊을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참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안일한 행동에 큰 상처를 주었다.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신혼 시절에도 아내와 가끔 다투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가까이 살던 사람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사소한 습관 등이 원인이 되었다. 아내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하면 말을 들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한다. 하지 말아야 말까지 해놓고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는데, 옷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회피한 것이다.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남편이 사라졌다. 아내 입장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큰 상처를 주었다. 16년째가 된 지금까지도 많은 상처를 주었다. 아이들에게도 내 기분에 따라 소리 지른 적이 많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반복되는 현실에 아이들도 깊은 상처를 받았다. 알게 모르게 가족에게 참 많은 고통과 상처를 주었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면 뭐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감정적으로 더 깊고 많이 의지하게 되니 그것이 깨지면 더 큰 고통을 받는다. 나는 당신과 가까워 모든 것을 다 허용해 주는데, 왜 당신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냐는 보상 심리가 작용한다.
또 깊은 관계일수록 자신의 감정, 비밀 등을 공유한다. 이것은 상대방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져 더 슬프게 느껴질 수 있다.
관계가 긴밀해지면 서로 유대감이 형성된다. 강한 애착이 형성되다 보니 상대방에게 더 깊게 빠져든다. 좋게 빠져들면 괜찮지만, 그것이 오히려 깨졌을 때 더 큰 상처를 입는다. 그것이 누적되면 결국 관계라는 그릇은 깨지게 된다.
처음 만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단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서로 맞춰 주고 배려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 그런 기본적인 행동에 대해 자꾸 무뎌진다. 자신 의견대로 하기를 강요하거나 상대방을 무시하기도 한다. 결국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선을 지켜야 한다. 필요할 때 서로에게 공간을 주고 개인적인 시간도 허락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만 담담하게 대화로 풀어도 좋다.
깊은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 가장 많이 받는다. 어떻게 보면 지금 당신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감사한 사람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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