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나이 들면 꽃을 좋아한다며 우스개 소리로 떠도는 말들이 나한테 해당될 줄 몰랐는데 내가 꽃 사진 찍고, 꽃을 사 모으고 있다. 어릴 때 관찰일기 쓰는 것조차 왜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움트는 것이 신기하고 꽃 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들고 다시 피어나는 식물을 변화가 경이롭다.
게으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식물을 살핀다는 것은 진짜 사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게을러서 때때로 식물들을 초록별로 보내기도 한다.
지난주 접시정원에 잘 자라던 화이트스타가 몽창 시들어버렸다. 흙에서 얼른 파내 종이컵에 하루 담가 뒀더니 몇 줄기가 물을 올렸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배양토도 있겠다, 화분도 있겠다 옮겨 심어야지~ 마음만 먹고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한 줄기 빼고 다 죽어버렸다.
시기를 놓쳐서 후회하는 일은 늘 생긴다. 미루는 습관을 고쳐야 해..
산세베리아도 새 친구가 나왔고, 도라지도 시들어서 손질해줘야 하고, 물에 꽂아 둔 이름 모를 초록이는 녹조가 심하고 엉망으로 엉켜 있어 마음에 걸렸다. 피곤하지만 큰 마음먹고 분갈이 시작이다. 분갈이가 귀찮기도 하지만 분갈이 후에 식물이 죽을까 봐 꺼리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분갈이는 첫 번째로 내 일정이 바빠서 당근 거래를 두 번이나 변경해야 해서 미안한 마음에 받지 말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크테난테 아마그리스. 10/11 데려와서 2주 정도 키웠는데 예쁘고 잘 자란다. 집이 작아 보여 분갈이 도전!
살살 꺼내며 초록이한테 말을 건다.
미안해. 내 손길이 좀 서툴러. 나는 손도 뜨거워. 근데 나는 너를 좋아해. 니가 나랑 오래 같이 있으면 좋겠어.
두 군데로 나눠서 심었다. 며칠 지켜봐야겠지만 예전에 분갈이할 때보다는 덜 힘드니 자신감이 붙는다.
두 번째는 갑자기 새 친구를 만들어내고 휘청 거리던 산세베리아. 새로 나온 거 달라고 ~달라고 조르던 분에게 나눠주기 위해 산세베리아도 두 군데로 나눴다.
뿌리가 붙어 있어 어떻게 분리해야 하나 고민하며 검색하는데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부러뜨려서 심었다. 산세베리아에게도 미안하다고 잘 자리 잡으라고 속삭였다.
당근 이웃님이 나눔 해준 사랑초도 번식하길 꿈꾸며 큰 화분으로 옮겼다. 사랑초는 처음 키우는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꽃에 반해 데려왔던 도라지는 게으른 나를 만나 꽃망울도 제대로 못 터뜨리고 시들어러버렸다.
화분에서 꺼내다가 뿌리가 똑 부러져버렸다.ㅠㅠ
뿌리는 뿌리대로 심고, 시든 잎과 줄기를 가지치기해서 따로 심었다.
뿌리 옆에 도라지 씨도 꾸욱 눌러줬다. 나오려나??
녹조물이라도 먹겠다고 힘겹게 뿌리를 내밀던 초록이들도 뿌리에 묻은 녹조를 씻고 다듬어 화분에 모아 줬다.
풍성해지지는 않고 계속 죽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달개비도 화분에서 꺼내보니 뿌리가 영 시원찮다. 어떻게 해주면 튼튼해지겠니? 일단 옮겨 심었다.
녹조 속에 뿌리를 수염처럼 내리던 이름 모를 이 초록이도 화이트스타와 같이 심었다.
10개의 화분으로 옮겨준 초록이들.
며칠 동안 힘내라. 새집에서 적응해서 같이 잘 지내자.
사랑하니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은 사람뿐만 아님을 식물을 키우며 알게 됐다.
3월 대대적인 분갈이를 했을 때, 다른 직장으로 이직해서 적응 중인 지인에게 분갈이 이야기를 하며 위로의 말을 전했었다.
분갈이를 하면 한동안 식물들이 몸살을 겪는다. 분갈이 직후에는 물도 안 두고 햇빛이 아닌 반그늘에 둔다. 시들 거리다 새 잎이 나오고 풍성해진다.
새 직장 적응도 옮기자 마자는 힘들지만 곧 새로 뿌리내려 전보다 더 튼튼하게 지낼 것이다.
초록별로 가지 말고 나랑 오래 같이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