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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Oct 30. 2020

우리만의 놀이터, 반백수 복합몰

모든 일상이 놀이가 될지니

<사각사각 반백수 미용실>


안녕하세요. 반백수 미용실에 방문하신 고객님을 환영합니다.


상냥한 인사와 함께 반백수 미용실이 첫 고객을 맞았다. 고객도 미용사도 오늘이 처음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잘려본 일이 없는 고객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남의 머리카락을 잘라본 일이 없는 미용사가 만났다. 코로나로 인한 불안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이왕이면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자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여느 어린이 미용실 못지않게 귀여운 컷트보도 두르고, 좋아하는 노래와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아낌없이 튼다.


요청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의 종류는 단 한 가지. 최신 유행 스타일인 바가지 머리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각사각 가위 소리에 고객의 얼굴이 울상이다. 이럴 때는 우유 서비스가 최고지! 쪽쪽 부드러운 목 넘김 덕에 둘 사이의 긴장감마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헤어컷 비포 앤 애프터


고객님, 스타일 마음에 드세요?


화면 속 핑크퐁에게 고정된 눈이 거울로 돌아설 리 없다. 오늘 처음 입봉 한 미용사지만, 앞머리가 두 겹으로 레이어드 되는 놀라운 헤어 디자인의 경지를 이루었다. 하하하. 대꾸는 없었지만 컴플레인도 없으니 고객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고객과 함께 방문한 동행객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지만, 가뿐히 무시하도록 한다. 헤어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이 고객의 얼굴엔 어떤 스타일을 가져다 놓아도 귀여울 테니까!




<우당탕탕 반백수 스파룸>


단 한 사람의 고객만 입장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 하지만 늘 두 명의 행복 도우미를 동반한다. 도우미 A는 고객의 몸을 개운하게 씻기고, 물의 온도를 시시때때로 점검한다. 너무 높거나 낮으면 고객의 휴식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나 고객님, 피부가 참 좋으시네요. 아기 피부 같아요!


이때 고객이 적적해하지 않도록 말을 걸어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듣기 좋은 말을 할수록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다. 도우미 A의 입은 칭찬을 전하기 위해 날로 날로 더 가벼워진다. 특히 몸을 씻기면서 마사지 서비스를 시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 단골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발가락 마사지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훑어 나갈 때마다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다.


도우미 A의 임무가 무사히 마무리되면 도우미 B가 등장한다. 고객이 우당탕탕 움직여가며 튀기는 물을 온몸으로 맞아주는 것이 그의 몫이다. 고객은 도우미 B의 몸을 과녁 삼아 최선을 다해 물을 튀긴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더 많은 양의 물이 그에게로 향한다.


끼야아악! 아이 깜짝이야! 엄마야!


도우미 B의 기똥찬 추임새가 더해질수록 고객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펄럭펄럭 반백수 세탁소>


의류 건조기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필시 빨래가 모두 말랐다는 알림일 것이다. 세탁소 알바 A는 얼른 사장님을 부른다. 재빠르게 빨래를 꺼낸 뒤 정리하기 위해서다.


사장님, 이 빨래 저~쪽 알바에게 전달 좀 해주세요.


따끈따끈한 빨래가 나오는 곳으로부터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알바 B가 대기하고 있다. 사장님이 조막만 한 손으로 수건 하나를 집어 들고 알바 B에게 이동하는 동안, 알바 A는 재빠르게 다른 빨래를 갠다. 전달 임무를 완수한 사장님은 다시 알바 A에게 달려간다. 알바 B에게 주어지는 노동 시간은 바로 그 순간이다.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고 손에 들린 수건을 개야만 한다. 사장님이 여러 차례 빨래를 들고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동안, 거의 모든 빨래가 반듯한 모양으로 정리된다. 사장님의 체력이 방전되는 것은 초특급 보너스다.


에이, 사장님. 그건 갑질이에요, 갑질!


본연의 임무를 잊고 개놓은 빨래를 헝클고 있는 갑질 사장님


반백수 세탁소에서는 사장님이 본연의 임무를 잊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르던 빨래를 던져버리고, 이미 잘 포개 놓은 빨래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갑과 을의 전쟁이 시작된다. 1:2의 치열한 싸움이다. 한 사람은 모든 빨래를 헤집어 놓고, 나머지 둘은 재빠르게 그 빨래들을 접어가며 사수한다. 대부분의 경우 갑의 완벽한 승리로 결판이 나지만, 을들은 오늘도 티끌 같은 노력을 해본다. 찬란한 반란을 꿈꾸며.





<칙칙폭폭 반백수 기찻길>


칙칙폭폭!


가장 먼저 이 말을 외친 사람이 선두에 선다. 다른 두 사람이 앞사람을 부여잡고, 허리와 꼬리의 몫을 담당한다. 기차의 경유지는 주로 빨래 바구니와 옷방이다. 칙칙폭폭 이동하는 동안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이 기차에 올라탄다. 현관 근처에서 승차한 양말 세 켤레는 나란히 다음 정류장인 빨래 바구니 역에서 하차하도록 한다. 식탁 의자 뒤에 걸려있던 외투는 기차를 타고 옷방까지 장거리 여정에 오른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반백수 기찻길은 시도 때도 없이 가동된다.




<쓱싹쓱싹 명탐정 반백수>


이거 뭐지?


명탐정이 약속된 신호를 보내자, 조수가 신속하게 곁으로 다가선다. 명탐정의 손에는 돌돌이 테이프 클리너가, 조수의 손에는 물티슈가 들렸다. 그곳의 먼지를 분석해 보니,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명탐정이 돌돌이를 돌돌돌 돌려 찌꺼기들을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부분은 조수의 몫이다.


과자 부스러기의 흔적을 인멸하고 있는 명탐정님


명탐정님, 혹시 이 것도 필요하신 가요?


조수는 조용히 물티슈 뚜껑을 열어 명탐정에게 건넨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명탐정이 과감하게 물티슈를 한 장 뽑아 들고 근처의 펜스를 닦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누군가 색연필로 그려놓은 낙서가 남아있다. 낙서의 범인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쳐버린 명탐정이 물티슈를 그 자리에 놓고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 사라져 버린다. 이번에도 역시 미처 처리하지 못한 부분은 조수의 몫이다.




<저요저요 반백수 음식점>


식사 시간이 되어 음식점에 입장했는데도 밥을 먹는 일에 시큰둥한 고객이 있다면? 저요 저요 챌린지가 시작된다. 서두는 음식점 주인장의 질문으로 열게 된다.

밥 먹을 사람?

-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함께 식사를 하러 온 동료의 역할. 오른쪽 손을 귀 옆에 붙여 하늘 위로 번쩍 올려 들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신명 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저요! 저요! 저요! 


밥에는 관심 없던 고객도 어느새 동화되어 함께 '저요! 저요!'를 외친다. 간절함이 극에 달하는 그 순간, 고객의 눈 앞에 식판을 내려놓는다. 분명 입맛이 없다던 그녀. 잠깐 사이에 3일을 굶은 승냥이 같은 맹렬한 표정을 획득하였다. 


갑자기 밥이 먹고 싶어지신 고객님


우와, 맛있다. 정말 맛있다. 최고! 최고!


음식장 주인장과 식사하러 온 고객의 동료까지 합세하여 먹는 내내 감탄사를 남발한다면? 오늘도 이 음식점은 무난히 솔드 아웃을 선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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