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사랑으로 다시 피어나다

by 찰라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 사랑으로 다시 피어나다


작년 10월, 아내가 낙상으로 상급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회복한 뒤 재활치료를 시작했고, 이어 재활전문병원으로 옮겨온 지도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아내는 이 기간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재활에 임했다. 물리치료사들은 “200여 명의 환자 중 이렇게 꾸준히 열심히 하는 분은 드물다”고 감탄했다. 더구나 칠십 노구의 남편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6개월 동안 24시간 간병을 이어간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무려 180일의 밤과 낮을 함께 견딘 시간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초인이 아니다.

다른 간병인들처럼 지치고 힘들었다.

다만 나를 버티게 한 힘은 오직 사랑과 기도였다.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말조차 어눌했던 아내는,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사랑과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고, 반세기를 함께 살아온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침묵의 언어로 서로를 위로했다.


사랑은 원자폭탄보다 강하다


인간의 생명은 꽃잎처럼 연약하지만, 진실한 사랑과 기도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

핵폭탄이 세상을 파괴한다 해도, 인간의 사랑만은 꺾을 수 없다.


아내가 잠든 밤, 나는 병실 의자에 앉아 명상에 들었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 걷고, 머물고, 앉고, 누워 있는 모든 순간이 수행이었다. 간병의 자리가 곧 선(禪)의 자리가 되었고, 고통 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깊은 몰입을 얻었다.


마침내 우리는 ‘퇴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아내는 뒤뚱거리며 걸음을 옮길 수 있을 만큼 회복했고, 정신도 또렷해졌다. 의사는 요양병원으로 옮기거나 2년 더 치료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정신이 온전한 아내를 요양원에 맡길 수는 없었다.


나는 요양보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서 오래 전부터 보아왔다. 요양원에 계신 환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곳은 돌봄의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현대판 고름장과도 같았다. 나는 아내가 그곳에서 남은 삶을 보내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휠체어를 대여하고, 안방을 병실처럼 꾸몄다. 전동침대와 미끄럼 방지 매트, 욕실 안전바와 변기 손잡이까지 마련했다. 투약법, 인슐린 주사, 소독, 혈당·혈압 측정 기구를 정리해 두었고, 가정간호와 방문재활 서비스, 지역 돌봄 자원도 미리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퇴원을 결행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마음은 한결 평온해졌고, 나 역시 모처럼 집에서 잠들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퇴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할일이 더 많아졌다.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해주던 일들까지 모두 내 몫이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왜냐하면 ―


모든 것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병실의 불빛 아래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나는 알았다. 고통도, 눈물도, 끝없는 간병의 피로도,

모두 사랑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 때문에 나는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고,

사랑 때문에 아내는 다시 일어서려 했다.


퇴원은 단순한 귀가가 아니다.

집은 또 하나의 치유의 병실이 되고,

하루하루가 재활의 여정이 된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붙드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사랑은 약보다 강했고,

기도보다 깊었으며,

때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이 되었다.


이제 돌아보니,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를 이끄는 힘은 오직 사랑일 것이다.



───────────────

❤️

“사랑 하나로는 부족했지만,

사랑이 없었다면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


keyword
이전 09화조심, 또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