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랑 하나로는 버티기 어렵다
나는 결국 집을 선택했다.
아내는 당연히 집을 원했다. 병원 복도와 하얀 벽이 아니라, 오래 함께 살아온 익숙한 공간, 창밖의 나무와 햇살이 비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집이 좋아요. 집에 가고 싶어요.”
아내의 목소리는 언제나 간절했다. 그 소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바람,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내 몫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집을 선택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일단 좋았다. 환자도 가족들도 마음이 안정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회복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상 집에 돌아오니 현실은 벽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식사 준비, 약 챙기기, 목욕시키기, 빨래, 병원외래, 재활치료, 기저귀 갈아주기, 화장실 돕기, 혈당 치크, 혈압 체크, 하루 4번의 인슐린 주사, … 하루 스물네 시간이 온전히 간병으로 채워졌다. 간병과 간호를 몽땅 책임져야 했다.
잠시 눈을 붙여도 언제 깰지 모르는 불안, 넘어질까 두려운 긴장, 응급 상황이 생길까 조마조마한 마음. 밤에 적게는 5회 많게는 10번 이상 깨어야 했다.
사랑 하나로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두 갈래 길 사이에서 흔들린다.
“집에 있어 행복해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요양 시스템을 다시 찾는 것이 맞을까?”
한쪽에는 환자의 바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가족의 희생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지만, 돌봄의 무게 앞에서 사랑은 때로 지치고 흔들린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다 다시 아내를 바라본다.
창가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웃는 그 얼굴, 손을 잡으면 따뜻하게 전해오는 체온. 그 순간 나는 또다시 다짐한다.
“조금 더 버텨보자.”
그러나 한편으론 안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제도가 함께해야 하고,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은 더 이상 개인의 희생으로만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집은 가장 따뜻한 요양원이자, 가장 힘겨운 전쟁터다. 나는 그 사이에서 오늘도 갈등한다. 사랑 때문에 지치고, 사랑 때문에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사랑하는 이를 집에서 돌보는 일이, 더 이상 가족만의 고통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 길 위에 제도와 사회가 함께 서게 하소서.”
매일매일 기도를 하며 버티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육제의 한계와 정신의 피로가 함께 덮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다른 대안과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답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 고립된 전쟁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사회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요양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환자 상태에 따라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골라야겠지만, 요양원시스템에 따라 시설, 환경,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재활병원
전문 재활치료(물리·작업·언어치료), 회복 가능성 크지만, 비용 부담 많고 병원의 엄격한 규율의 피로감을 느낀다. 회복 가능성이 크고 의지가 강한 환자에게 적합
◐요양병원
전문의 상주, 기본 의료 관리, 비교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으나, 맞춤 재활 부족으로 무기력감을 느낀다. 중증·만성질환, 안정적 관리 필요 환자에게 적합
◐요양원
생활 돌봄, 공동체적 환경을 갖추고 비용부담이 비교적 적으나, 의료적 지원 부족하다. 치료보다 생활 돌봄이 중요한 환자에게 적합
◐집(홈케어)
가장 익숙하고 편안, 환자 만족도가 높으나, 가족 부담이 크고 소진 위험이 많다. 가족 헌신 가능, 방문간호·데이케어 연계 시 효과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환자들은 집에 있고 싶어한다.
집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죽을 때까지 있고 싶은 가장 좋은 요랑이다.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
낮 동안 전문 프로그램, 가족 휴식 가능하나, 의료적 지원 부족, 매일 통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이다. 일시적 돌봄 필요, 가족 휴식이 필요한 경우 적합
사랑과 제도가 함께 서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아내는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가족 중에서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다. 나는 오늘도 아내의 손을 잡으며 다짐한다. 끝까지 곁을 지키겠다고. 그러나 동시에 외친다.
“사랑만으로는 간병을 버틸 수 없습니다. 제도가, 사회가, 국가가 함께해야 합니다.”
집은 가장 따뜻한 요양원이자, 가장 힘겨운 전쟁터다.
이 전쟁을 가족만의 힘으로 치를 수는 없다.
사랑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사회와 제도가 함께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집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진정한 “홈 스위트 홈”이 될 수 있다.
나는 아내를 집에서 돌보기로 결정하고, 아내가 빠르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제발 요양원에 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고 회복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내여, 힘내자!
“집은 가장 따뜻한 요양원이자,
가장 힘겨운 전쟁터다.
그러나 사랑과 제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홈 스위트 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