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니 Apr 11. 2021

현대 영장류의 슬기로운 채집 생활


최초의 영장류는 주로 채집을 했다고 한다. 어쩐지 털가죽으로 몸을 감싸고 나무 막대기 따위로 동물을 에워싼 채 사냥하는 초기 인류의 이미지가 익숙한 것은 손쉽게 가공된 교육자료와 그로 인한 우리의 편견일 뿐이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초기의 영장류는 낟알을 줍고, 과일을 따고, 포식자가 먹다 남긴 동물 사체에서 주워 식량 대부분을 취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현대인, 그러니까 더 이상 채집을 직접 할 필요가 없는 이 영장류에게 여전히 채집의 본능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질서 없는 흙바닥에서 낟알 하나를 찾듯,  손이 곱아드는 추위 속 얼어붙은 땅 위에 떨어진 도토리 한 알을 찾듯, 어지러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계속 채집한다.


나의 학생 그라지엘라는 뛰어난 채집인이다. 그는 재작년 말에 장성한 아들이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지는 것을 목도했다. 이 섬에서 수술이 불가능해 호주로 응급 이송된 아들을 따라가 병간호를 하는 동안 6개월 동안 이곳에 있던 그의 친정엄마는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몇 달 후엔 몹시 따르던 이모마저 암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의 불행에 숨이 막혔다. 나는 자글자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I’m so sorry to hear that. You must have gone through a lot.

(유감이야.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겠다.)”

그러자 그녀는 아주 가볍게 ‘C’est la vie.(그게 인생이지, 뭐.)’하고 답했다. 

난 어쩐지 용감해져서 그녀에게 그 기간 동안 우울하지 않았는지,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호주에 있는 동안은 Jacaranda(봄에 피는 보랏빛의 작은 꽃)가 병원 앞 길목에 쫙 피었지 뭐야. 

그게 위로가 됐어. 그 길을 자주 걸었지. 

밥 먹고 걷고, 아들 재활 훈련받는 동안 걷고, 잠이 안 오는 새벽에 걷고.”


그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땐 정말 슬펐어.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날 오후에 

표정이 없는 얼굴로 아들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어눌하게 묻더라고. 

엄마 지금 기분이 좀 어떠냐고. 그때 내 아들은 뇌출혈 부작용으로 단기 기억 상실증을 겪고 있었거든. 

아침에 겪은 일도 오후만 되면 까마득히 잊곤 했는데, 

자기 할머니의 죽음은- 우연이었는지,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인지 - 기억하고 있더라고. 

슬픈 와중에 그 아이의 병세가 나아지고 있다는 게 위로가 됐어. 

그러니까 나는 슬픈 와중에도 계속 작은 행복을 캐냈지(dig up). ”


이 솜씨 좋은 채집인은 단지 지면 위에 있는 행복 말고도, 흙 아래 덮여 지나칠 뻔한 행복까지 

캐내어 채집한 것이다. 손톱 밑에 흙이 끼일지 언정.


나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디테일한 행복을 계속 주워 담아야 한다. 슬픔과 불공평, 잔인함, 빈곤과 무기력, 이기심이 난무하는 세상에만 집중할 땐 삶의 많은 것들이 뭉툭해진다. 디테일이라곤 없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의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이 디테일에 무뎌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퇴근길 공원에서 본 작은 아이가 보송보송한 곱슬머리 위에 노란 헬멧을 쓰고 두 발 자전거를 배울 때의 표정, 둥실둥실 떠다니기만 하는 줄 알았던 부레옥잠에서 피어나는 연약 하지만 화려한 꽃, 좁은 갓길에서 주차를 하는 나를 지켜보더니 도와주던 친절한 타인, 아침에 내린 커피의 구수한 향, 커피와 먹으라며 비건 스콘을 싸준 친구, 저 멀리 오는 나를 위해 건물 문을 열고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는 느긋한 노인, 친구의 아기가 나를 보며 서툴게 ‘이-모오’하는 순간, 그런 것들.

2021년을 살아가는 영장류에겐 그런 것들이 점점 더 소중해질 것이다. 


그러니 나의 동료 영장류들이여, 우리 채집을 게을리하지 말자.

이전 01화 섬에 살 운명의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