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의 짧은 글 모음
~님 문화
요 몇 년 간 상대방을 ~님이라고 부르는
커뮤니티에 많이 소속되어왔다.
~님의 세계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나이를 묻고,
암묵적으로 일찍 태어난 자로부터
서열이 정해지는 관계에 익숙한
한국사람으로서,
~님은 마법이었다.
~님의 세계에서 나이를 따져 묻지 않으니,
상대방이 누가 되든
그 사람의 직업, 성격, 취향 정도가 각인된다.
누구도 비교적 수평적인 상태로
대화에 임하게 되며,
그쪽 또한 나와 같은 태도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님 관계에서의 룰은 딱!
~님까지라는 사실!
"~님... 됐고!
오늘부터 누나라고 부를게요."
"말 놓을게 ... 요"
"진짜 말 놓는다."
"누나!"
한동안
~님이 그어놓은
한줄기 옅은 선 안에 서 있었는데,
어느 날,
훅~ 그 선을 밟고
누군가 친밀한 언어로 다가오면,
익숙하지만, 다소 어색한 감정에
혼란스러워진다.
아~ 이제 이 친구와는 ~님이 정해놓은
그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적 룰이 깨지고,
서로의 밑장을 까고
소주 한잔을 나눌 수 있는 건가라는
묘한 기대감이 일렁이면서도...
아아~ 안돼!
나는 그 안락한 ~님의 세계를
지속하고 싶은데...
이 평화로운 ~님의 세계를
깨고 싶지 않아... 와 같은
양가적 감정에 휩 쌓이게 된다.
또, 으레 술값을 누나에게 씌우고 달아나려는
동생들의 수작이 아닐까란
생각에도 이르게 되지만...
오랜만에 누군가
~님의 금기를 밟고 넘어와 무척 신선했다.
얼마만인가!
하지만 생각을 정리한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
"안녕?" 인사를 하니,
그쪽이 되려... "안..녕하세요." 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 건,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한 것이 아닐까
유추를 해보게 된다.
'아.. 그냥 ~님이라고 할걸.
역시 ~님이 편한데....'
이런 고민 아니었을까?
~님에서 누나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