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덥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전날에는 창문도 열고 선풍기를 틀어야 잠에 들 수 있었는데, 새벽 사이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찬 기운이 들어왔다. 살에 닿는 바람결이 달라짐을 느끼며 어깨가 살짝 떨린다. 무겁고 축축했던 바람이 하룻밤 사이에 가벼워져 이불의 무게가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거추장스러웠던 이불 끝을 잡고 가슴팍까지 끌어올리며 오랜만에 꿀잠에 든다.
추석 명절에도 에어컨이 필요할 만큼 예년에 비해 길어진 여름 탓에 막상 오지도 않은 가을이 혹여 짧게 지나가지 않을까 미리 서운했다. 어른이 되면서 계절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40살에는 시속 40km의 속도로, 50살에는 시속 50km의 속도로 시간이 지나간다는 말이 중년이 되니 이해가 된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강원도 문막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떠올랐다. 마침 은행나무 축제를 하기 한 주 전, 우리 가족은 머뭇거리다 때를 놓치랴 부랴부랴 길을 떠났다. 아침저녁 공기가 달라졌기에 노오란 은행잎을 기대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언뜻 보이는 저것이 산인지 나무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아름드리나무인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샛노란 은행잎이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을 상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본 은행나무는 청청했고, 일부 그늘진 곳의 잎들의 색만 살짝 바래져 있을 뿐이었다. 날씨가 추워져야 은행잎이 노래지는데 여름의 더운 기운이 너무 오래 지속된 탓에 시기가 늦어졌다는 푸념 섞인 소리가 들렸다. 그제 서야 가을 초입에 들어선 시간을 실감하고 더위를 한가득 안고 있었던 여름이 잘 지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금방 느끼는 듯 착각하지만, 자연은 극단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제대로 물든 은행나무는 보지 못하였고, 성급한 마음에 헛걸음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날 이후로 가을은 더 깊어져 있었다. 밤낮의 기온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더니 주변의 나뭇잎은 노랑빨강으로 물들었고, 성숙해진 과육에는 달콤한 과즙이 가득했다. 경량 패딩을 꺼내 입은 사람들이 눈에 부쩍 띄고 길가 곳곳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밟혀 바스락거렸다. 만연한 가을이다. 계절이 바뀌면 늘 나도 함께 점검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올 초에 계획해 둔 목표들의 진도를 따라가자니 마음이 분주하다. 하지만 실행력은 상실한 지 꽤 되었다. 치열하게 여름을 지냈는데 결과적으로 끝까지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를 보면서 상실감이 든다. 가을밤이 깊어질수록 생각이 깊어진다.
발에 밟히는 낙엽이 많아져 바스락대는 소리가 귓가를 따라다닌다. 나무에 움터서 꽃과 열매를 맺게 도와주던 잎들이 여름 내내 햇빛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햇빛을 온전히 다 받아 이제는 바짝 메말라버린 잎들은 결국 나무에서 분리되었다. 어릴 적에는 소명을 다하고 떨어진 낙엽이 생애의 끝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중년이 된 지금 낙엽이 달리 보인다. 떨어진 낙엽은 흙에서 거름이 되어 겨울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는 색감과 소리로 가을 운치를 더 해주니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가을은 어른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가을이 가을다워지려면 모든 변화를 이겨내고 겪어내야 하는 것처럼, 어른이 어른다워지는 것도 끈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가을은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만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하모니를 이룬다. 조화를 이루지만 고유의 색을 잃지 않는 모습이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계절이 다할 때까지 자기 몫을 다하는 낙엽처럼 성실하게 할 도리를 하며 사는 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 될 터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절처럼 자연스럽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의 색을 빚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가을밤이 깊어질수록 어른의 생각도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