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설레어 본 적 있나요?’ 어디서 본 것 같은 이 질문은 볼 때마다 나를 멈춰 세운다. 자기 계발서였는지, 심리책이었는지, TV 프로그램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질문은 늘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아마도 ‘넌 뭘 좋아해?’ 보다 더 직접적으로 감정의 경험을 묻기 때문일 것이다.
설렘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즐겁고, 떠오르고, 다시 하고 싶어지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첫 감정이다. 그래서일까, '설레임' 이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입이 즐겁고, 맛이 기억에 남고, 그 시원함을 오래 느끼고 싶어진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짧은 순간에는 작은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이 다 사라지면 설렘도 함께 사라진다.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대만 남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아쉽고, 실망스럽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설렘으로 시작한 감정이 뜻밖의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나는 늘 당황한다. 설렌 게 잘못은 아닌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퍼즐 맞추듯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기대', 좋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다른 얼굴이 숨어 있었다.
"기대하다"라는 동사가 '기대'라는 명사가 되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기대에 기대는 순간, 그것은 금세 집착으로 변하고 집착은 조급함과 불안을 불러온다. 물론 기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따라오는 감정들은 가끔 감당하기 어렵다. 그 감정들이 새어 나올 것 같을 때, 잠시 감싸서 마음속 어딘가에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처럼 보여도, 결국 그 감정들이 내가 무엇을 얼마나 바라왔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그 사실을 가장 깊게 깨달은 순간은 양육의 과정에서였다. 두 아이를 키우며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첫 뒤집기, 첫 옹알이, 첫걸음마... 그때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천재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기저귀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는 것 같던 순간조차 기쁨이었다. 그게 모성애인지도 몰랐다. 아이들이 커서 대화가 가능해지자 설렘은 더 커졌다. "이제는 잘 이해하겠지?", "우리는 더 행복하겠지?"라는 기대도 함께 자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일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청소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유아 같은 모습에 아쉽고, 답답하고, 섭섭해 화가 치밀었다. 분노하는 내 모습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나를 갉아먹는 건 무엇인가? '
결국, 아이들에게 대한 내 기대가 너무 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안에서 불씨가 자라 그것이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설레고, 기쁘고, 행복했다. 그러나 현실의 아이들은 내 상상과 같지 않았다. 그래서 실망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독립된 존재임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서라도, 나는 '기대에 기대지 않는 사랑'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 사랑이라면 사실 이미 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아닌 남편에게 말이다. 남편과의 문화 충돌을 겪어 낸 지 15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기질이 변하지 않음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서로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둘 사이의 싸움이 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시점에 적어도 나는 남편에게 섭섭함 대신 측은지심이 생겼다.
어느 날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이제 너희들에게 기대를 안 할 거야."
아이들은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그래서 덧붙였다.
"엄마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야. 엄마가 기대를 하니까 자꾸 잔소리가 나오고, 너희가 듣지 않으면 화가 나잖아. 그래서 이제 기대를 내려놓으려고 해. 화를 내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어."
그제야 아이들은 안심하는 듯했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 되뇐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말을 잘 들어주는 날은 감사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실망하지 말자."
기대를 내려놓고 나니, 아이들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