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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21화

탄생제(誕生祭)

먼저 떠난 이들이 부러워지는 날

by 천비단


매년 이맘때쯤이면 삶과 죽음을 고민한다
삶은 축복이라며 죽음을 기만하는 자들에게
교수한테서 배운 언명을 제시한다

오늘 같은 날이면 먼저 떠난 이들이 부러워진다
무심코 뒤를 쫓다 이성이 다그친다
흉은 남기지 않도록 주의할 것

뺨이 행성처럼 차가워지는 밤이면 고향을 떠올린다
절대 닿을 수 없는 그곳
밤하늘마저 너를 가리웠다 빛조차 사라졌다

차라리 온 세상이 눈에 뒤덮이길 바라는 날
이름을 잃은 일은을 이은 이음새 사이로
죽어가는 사내가 목격된다 곧 하나의 점이 되어 소멸한다



<탄생제(誕生祭)>, 2021.11


<소멸>, painted by MS Image Creator




나는 생일 문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내 생일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불알친구들도 내 생일을 모른다. 내게 생일이란 오랜만에 케이크 먹는 날에 불과하다. 뚜레쥬르 같은 데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 사서 가족과 나눠먹는다. 그것으로 내 생일은 끝이다.


생일을 싫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냥 싫어했다. 학교 친구가 생일 언제냐고 물으면 "언제일 것 같아?"라고 되물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 번은 생일날에 학교 행사 도중 사회자가 "오늘 생일이신 분에게 문화상품권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 생일을 알고 있던 다른 친구들이 "병신아, 뭐 해? 빨리 나가"하며 부추겼다. 나는 나가지 않고 버팅겼다. 전교생에게 내 생일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생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생일날이 되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린다. 그리고는 어수선한 선물증정식이 시작된다. 과자나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를 주기도 하고, 건미역, 프리큐어 마법봉 같이 쓸데없는 물건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은 그 전리품을 챙겨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왜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가 생겼을까. 그 기저에는 '탄생은 축복이다'라는 절대불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사람들은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여기기에, 자연스럽게 생일을 축하하게 된 것이다. 성격이 베베 꼬인 나는 이 명제에 반발심이 들었다. 탄생이 어떻게 축복인가. 탄생이 저주이고, 삶이 고통인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텐데. 반증이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틀린 명제 아닌가.


이러한 생각은 내 생일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심해지다가 생일 당일에 최고점을 찍는다. 나는 생일만 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들이 건네는 축하가 내 탄생을 향한 조롱으로 느껴져서, 삶에 대한 강요로 느껴져서.


탄생은 곧 의무가 된다. 그래서 생명을 버거워하는 존재에게 생일은 슬픈 처지를 상기해야 하는 괴로운 날이다. 나는 축하는 필요 없다. 축하보다 위로가 필요하다. 내 생일은 내 탄생을 위로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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