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과 화자를 구별하는 법을 덜 배웠다 짧은 글을 읽어도 그것을 쓴 자의 표정이 보였고 주인공의 고통은 곧 글쓴이의 경험처럼 읽혔다
내가 쓴 글에는 미처 숨지 못한 내가 배어 있었다 가만히 항변했다 나는 이런 놈이 아니에요 이 시의 화자는 제가 아니에요 읽은이는 내 말을 무시했다 함부로 나를 연민했다
나의 존재 무엇일까 저 잉크와 내가 다를 게 뭘까 도리어 그들은 내게 묻는다 생명이란 대체 무어냐고 그러면 나는 교과서 뒤적이며 잘난 듯 대답한다 사랑의 결실 혹은 하룻밤의 실수라고 우리의 열기는 우리의 눈을 녹일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검게 녹은 살점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나는 시인과 화자를 구별하는 법을 덜 배웠다 불펜이 더이상 써지질 않는다 심을 사야겠다.
<나는 시인과 화자를 구별하는 법을 덜 배웠다>, 2021.10
<배어드는 것>, painted by MS Image Creator
윤동주(1917~1945)
중학교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시인과 화자를 동일시하지 말라고 하셨다. 화자는 시 속의 인물일 뿐, 그것을 시인과 같은 인물로 여기면 시를 오독하게 된다고 하였다. 처음 시를 맞닥뜨렸을 때에는 오로지 내재적 관점으로만 읽으라고. 그때 배웠던 시는 윤동주의 것으로 기억한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
그 뒤로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를 배제한 시를 쓰려고 했다. 검은 글씨에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내 모습을 숨겼다. 그게 시를 쓰는 법인 줄만 알았다. 그 결과 형편없는 글이 쓰여졌다. 쉽게 쓰여진 시였다.
고등학생 때 진지하게 글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내 감정을 시에 녹아내려고 애썼다. 열심히 쓴 시를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에 올렸다. 좋아하는 작가가 운영하던 그룹이었다. 글 쓰고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아무개 고등학생이 끄적인 글에 사람들은 감사하게도 몇 자 댓글을 적어주었다. 누군가는 나보고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내주어서 고맙다고도 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시를 올리면, 그들은 그 시를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힘든 시절을 이겨내어 고맙다라니. 이 시는 그런 마음으로 쓴 게 전혀 아닌데. 감정을 담아냈을 뿐, 시의 화자는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데. 사람들은 시인과 화자를 구별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괜한 오해를 사는 기분이었다. 내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글을 읽고, 제멋대로 나를 제단하고 연민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두려움도 느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렇다. 글을 읽으면서 화자와 글쓴이를 동일시하고, 함부로 글쓴이를 동정한다. 글을 쓴 의도가 어찌 되었든, 나의 잣대로만 글과 화자와 글쓴이를 판단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했다. 글과 사람을 구별하는 것을.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위다.
내가 쓴 글에는 미처 숨지 못한 내가 숨어 있다. 노트에 써 내려간 검은 잉크는 곧 나이며, 나의 검게 녹은 살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시를 써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시인과 화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목청 높여 수업을 진행하신 국어 선생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