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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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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Sep 06. 2024

탄생제(誕生祭)

먼저 떠난 이들이 부러워지는 날


매년 이맘때쯤이면 삶과 죽음을 고민한다
삶은 축복이라며 죽음을 기만하는 자들에게
교수한테서 배운 언명을 제시한다

오늘 같은 날이면 먼저 떠난 이들이 부러워진다
무심코 뒤를 쫓다 이성이 다그친다
흉은 남기지 않도록 주의할 것

뺨이 행성처럼 차가워지는 밤이면 고향을 떠올린다
절대 닿을 수 없는 그곳
밤하늘마저 너를 가리웠다 빛조차 사라졌다

차라리 온 세상이 눈에 뒤덮이길 바라는 날
이름을 잃은 일은을 이은 이음새 사이로
죽어가는 사내가 목격된다 곧 하나의 점이 되어 소멸한다



<탄생제(誕生祭)>, 2021.11


<소멸>, painted by MS Image Creator




 나는 생일 문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내 생일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불알친구들도 내 생일을 모른다. 내게 생일이란 오랜만에 케이크 먹는 날에 불과하다. 뚜레쥬르 같은 데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 사서 가족과 나눠먹는다. 그것으로 내 생일은 끝이다.


 생일을 싫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냥 싫어했다. 학교 친구가 생일 언제냐고 물으면 "언제일 것 같아?"라고 되물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 번은 생일날에 학교 행사 도중 사회자가 "오늘 생일이신 분에게 문화상품권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 생일을 알고 있던 다른 친구들이 "병신아, 뭐 해? 빨리 나가"하며 부추겼다. 나는 나가지 않고 버팅겼다. 전교생에게 내 생일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생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생일날이 되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린다. 그리고는 어수선한 선물증정식이 시작된다. 과자나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를 주기도 하고, 건미역, 프리큐어 마법봉 같이 쓸데없는 물건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은 그 전리품을 챙겨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왜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가 생겼을까. 그 기저에는 '탄생은 축복이다'라는 절대불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사람들은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여기기에, 자연스럽게 생일을 축하하게 된 것이다. 성격이 베베 꼬인 나는 이 명제에 반발심이 들었다. 탄생이 어떻게 축복인가. 탄생이 저주이고, 삶이 고통인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텐데. 반증이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틀린 명제 아닌가.


 이러한 생각은 내 생일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심해지다가 생일 당일에 최고점을 찍는다. 나는 생일만 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들이 건네는 축하가 내 탄생을 향한 조롱으로 느껴져서, 삶에 대한 강요로 느껴져서.


 탄생은 곧 의무가 된다. 그래서 생명을 버거워하는 존재에게 생일은 슬픈 처지를 상기해야 하는 괴로운 날이. 나는 축하는 필요 없다. 축하보다 위로가 필요하다. 내 생일은 내 탄생을 위로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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