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행성에 버드나무 한 그루 있었다 행성 한가운데 우뚝 서서 노곤히 타디었다 한나절 걸어 행성 반대편 가면 흐르다 만 계곡 있어 미끄럼 타며 놀다가 해 지면 동쪽으로 뛰어 해 따라갔다 내 그림자가 겁이 많아 밤을 무서워한다
그림자가 언젠가 말해줬다 밤에는 우주 저 멀리 빛나는 행성 하나 보인다고 너무나도 창백하고 너무나도 푸르른 행성 있어 보다 보면 끝도 없이 무서워진다고 그 속에 더 무서운 생명 있어 이해 않을 외계어 하고 눈 마주치면 씨익 이빨 드러낸다고 그림자가 벌벌 떨며 말했다 나는 그 행성 한번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림자가 깜짝 놀라 나를 말렸다 안 된다고 너는 안 된다고 네가 저 행성에 가다가 행여 불시착하면 분명 상처받고 말 거라고 매일 밤 엉엉 울 거라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할 거라고 그러니 너는 이곳에 버드나무와 함께 살으라고 나는 너무 놀라 얼떨결에 알겠다 대답했다 어느 날 미끄럼틀 아래에서 깜박 잠들어 손가락 사이로 푸른 행성 목격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 차리니 지구에 태어나버렸다 그래서일까 해 지면 서쪽으로 뛰어 해 따라가며 우주 저 멀리 내 고향별 쳐다보는 거 버드나무 잿가루 날아갔을까 밤새 잠 못 든 채 울며 사과하는 거
<개밥바라기>, 2019.12
<개밥바라기>, painted by MS Image Creator
지구과학을 고등학교 3학년 때야 배웠다. 고2 때 물리1, 화학1, 생물1만 배우고, 고3이 되고 나서야 지구과학1을 배운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명백한 지구과학 차별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지구과학 차별과 혐오에 앞장 서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불만을 품진 않았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특이한 분이었다.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할까. 수업 시간에 수업은 안 하고 이상한 잡소리로 50분을 채우는 능력자였다. EBS가 아니었다면 내 지구과학 점수는 처참했을 것이다.
어느 날 선생님은 '개밥바라기'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저녁 즈음에 서쪽 하늘에 금성이 지는데, 개들이 이 금성을 보며 밥 달라고 짖어댔다. 그래서 금성을 '개밥바라기'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개가 밥을 바라며 짖는 별이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금성'이라는 행성에 끌렸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금빛으로 빛나는 행성. 내게 지구가 아닌 고향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금성이다. 내가 쓴 시에서 우주적인 '고향'이 나온다면 십중팔구는 금성을 뜻한다. 왜 이토록 금성에 애착이 가는 걸까. 어쩌면 전생이 서쪽의 샛별을 바라보며 애타게 짖던 개일지도 모른다.
나는 믿는다. 내 고향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노곤히 타들어가는 금성일 거라고. 지금 나는 지구에 잠시 불시착한 거일 뿐이라고. 그래서 고통받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