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음에서 들려온 신의 목소리

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것이다.

by 두니

모든 시간과 공간을

뭔가로 채워야 했다.


컴퓨터는 오랜 시간 켜져 있었고,

텔레비전의 볼륨은

집 안 구석구석을 소리 없이 가득 채웠다.


세탁기, 로봇청소기....

움직이고 소리 내는 모든 것이

빛으로, 소리로, 냄새로

분주하게 집 안을 채워 나갔다.


그러나 거실 한쪽,

움푹 파인 소파 위—

내 몸은 이틀을 거의 같은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애초에 의미 없었던 것들,

의미를 잃어가는 것들을 바라볼 뿐,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조차 없었다.

다만,

눈을 스치는 모든 것이 애닲고 아팠다.


빛은 어둠에 삼켜지고,

소리는 날카로운 소음이 되어 귀를 찢는다.

달콤했던 커피 향조차 이젠 역겨워졌다.


그러나 내 안의 깊은 곳에는

버려지지 않는 뭔가가

여전히 꿈틀거렸다.


그때, 나는 그것이
단지 '비어 있음'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신의 목소리였다.
어렴풋이 울려 퍼지는

직관의 화살이었다.


"모든 인간은 의도적인 행위와
무의식적인 지각을 구별할 줄 안다.
무의식적인 지각만이
완전히 신뢰할 만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무의식적 직관만이
진정한 진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그 직관의 화살이

내 심장을 관통하며

내 안에 바람을 일으켰다.


오래된 어둠 사이로 스며드는 빛처럼,

마음 깊숙이 진한 흔적을 남겼다.

그 순간, 나는 신의 존재를 느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할 이유였다.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었다.
그 사랑은 신의 뜻이었다.
나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것이었다.

마치 큐피드의 화살처럼

심장을 정확히 꿰뚫은 그 사랑
그것은 운명이었고,

변덕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사랑이 내게로 왔다.

직관의 화살을 타고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조용히,

그래서 더 깊숙이 내 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오래전,

나를 선택한 이 운명적 사랑은

그분의 사랑과 맞닿아 있었다.


의도된 행위로 얻은 모든 것은 무너졌다.

그러나 무의식의 직관과 감정,

심장을 관통하는 화살,

바람과 빛과 어둠—


그 모든 것이
그의 사랑 안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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