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소년>
가끔은 한 편의 시가
우리가 오래도록 묻어둔 감정을
불쑥 꺼내 보여줄 때가 있다.
윤동주의 「소년」은 그런 시였다.
마치 낯선 골목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오래된 향기처럼,
무심코 펼친 페이지 속에서
마음 깊은 곳을 살며시 흔들었다.
창밖에 연둣빛 잎사귀가 햇살에 반짝이는 어느 봄날,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눈을 감고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그 얼굴이 잔잔한 강물 위에 떠오른다.
윤동주의 「소년」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얼굴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 시를 읽고 있는 내내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차곡차곡 쌓여 있던 그리움이
봄볕처럼 마음 안으로 번져오고,
하늘빛처럼 스며드는 애틋함과 함께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던 어떤 순수함도 떠올랐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
나는 그 순간,
오래전 나였던 시절과
잊고 지냈던 누군가를 다시 떠올렸다.
‘파란 물감’이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머물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다 눈썹에 물들고,
따뜻한 볼을 씻은 손에도 번져버리는 그 푸른 빛.
시인이 바라본 장면들은
오래된 필름 속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장면은 그냥 예쁜 그림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빛엔 소년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소박하고 맑아서, 오히려 더 아픈 감정들이었다.
그리움은 어느새 내 손바닥에도 스며들었다.
손금을 따라 흐르는 강물처럼
기억도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 위에 떠오른 얼굴.
사랑처럼 슬프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순이의 얼굴.
그 이름조차도 시 속에서 오래도록 울림을 남겼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시의 마지막 문장은
마음 깊은 곳까지 고요하게 번져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는 순간.
그 안에는 받아들임이 있었고,
머무름이 있었고,
잊히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시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느끼게 했다.
말 없이 스며드는 이미지 속에서
우리 각자의 순이,
각자의 파란 물감,
각자의 강물이 조용히 떠올랐다.
윤동주의 「소년」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숨어 있던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주는 따뜻한 손길 같았다.
시를 덮고 난 뒤,
나는 한동안 나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봄바람의 결을 느끼며,
그저 그 시 안에 머물렀다.
시 한 편을 읽고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일어난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
이 글이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잔잔한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순이를
조용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