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병원>
살구나무 그늘 아래, 여인이 조용히 누워 있다.
흰 환자복을 입은 채,
하얀 다리를 햇살에 맡기고 있는 병원의 뒷뜰.
윤동주의 시 「병원」은
바로 그 고요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말없이 아픔을 견디고 있다.
가슴에 병이 있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으며,
나비 한 마리조차 그녀 곁에 앉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햇살 속에 잠시 몸을 맡기고,
살구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다시 병실로 돌아갈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의 모습은 시인 윤동주 자신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시대를 살아내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병든 몸을 이끌고 다시 일어서는 그 모습 안엔
작은 결심이 고요히 깃들어 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전하는 다짐처럼.
말없이,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저 아픔을 고치는 곳이라기보다
상처 난 마음들이 잠시 숨을 고르던,
조용한 피난처 같았다.
여인이 앓는 가슴의 병은
눈에 보이는 통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안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슬픔,
그리고 시대가 억눌러온 무언가가
조용히 스며 있었을지도 모른다.
햇살 아래 흔들리는 살구나무 가지와
그 위에 머물지 않는 나비,
그 풍경은 멈춘 듯 보이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이 문장을 마주한 순간,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떨렸다.
화자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누웠던 자리에 조심스레 몸을 눕히며,
그 고요한 고통과 함께 머문다.
그건 동정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같은 마음으로 앉는 일.
그리고 그 자리를 견뎌내려는 마음.
병원에 도착한 화자는
한 노(老) 의사를 만나게 된다.
“젊은이의 병을 나는 모른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건
그 시대의 어른들이
청춘의 아픔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에 대한
조용한 고백 같았다.
하지만 화자는 그 말에 화내지 않는다.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그 다짐은
자신의 고통 앞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처럼 느껴진다.
윤동주다운 조용한 고결함.
분노 대신, 침묵과 인내로 감싸 안는 태도.
시의 마지막,
여인은 금잔화를 가슴에 꽂고 병실로 돌아간다.
그 꽃은 시든 것이 아니다.
햇살을 머금은 채 살아 있는,
작고 단단한 희망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품고 다시 일어선다.
절망하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지켜낸다.
병실로 돌아가는 그녀의 걸음은
아픔이 가신 자리에 조용히 내려앉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다시 걷겠다는 마음,
조용한 다짐이 그 발끝에 머물렀다.
윤동주의 「병원」은
그 시절을 견뎌낸 한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자기만의 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치료받고,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여인이 누웠던 자리에
나도 조용히 앉아 본다.
햇살 한 줌이 살구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든다.
바로 그곳에서,
희망이 천천히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