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소주병>
누군가에게 소주병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람,
내 남편을 닮은 모양으로 다가온다.
작은 술잔에
자신을 조금씩 따라 비워내고,
그렇게 속을 비우면서도
늘 식탁 끝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 익숙하다.
남편은
힘들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 하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어깨가 얼마나 내려앉았는지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저 잠시 소주 한 잔 앞에서
자신을 비워내는 걸로
그 마음을 달래고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마치 소주병이 잔에 자기를 따르듯,
남편도 매일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며
가족을 위해 자리를 지킨다.
가장은 ‘아버지’만의 이름이 아니다.
이제는 아내도, 딸도, 아들도
누구든 그 무게를 나누어 짊어진다.
한때는 아버지만 짊어져야 했던 책임이었겠지만,
지금은 모두의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집에나
그 자리를 더 많이 감당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그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때로는 또 다른 가장이 되어
그 무게를 나누어 들고 있음을 안다.
공광규의 시 속 소주병은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을 비워가다 결국
문 밖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는 존재다.
남편도 그렇다.
강한 척, 괜찮은 척
자신을 따라내고 비우다 보면
어느새 말없이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남편을 빈 병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나도 또 하나의 소주병이 되어
그 옆에 함께 앉아주겠다고.
사는 건 원래
가볍지 않다.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무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남편을 이해하고 싶다.
그가 흘려보낸 말 한마디,
비워진 소주잔 하나에도
그가 살아낸 하루가 녹아 있음을 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덜어내는 사람을
나도 함께 지켜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해
조금씩 비워내며 살아간다.
아버지라는 이름이든,
남편이라는 이름이든,
혹은 아내, 딸, 아들,
그 어떤 이름이든.
그 무게를 알아차리고
가벼운 위로를 건네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를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남편이 소주병처럼
혼자 비워내지 않도록,
내가 곁에 있어주겠다고.
말없이 채워주고,
가끔은 함께 비워내며
같이 살아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