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부모님께 독립을 선언하던 날, 창가에 둔 화분에서 봄 냄새가 났었다. 4월의 끝자락에서 성인이 된지도 8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난 어느 봄날에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자식은 그렇게 부모님께 선전포고를 했다. 기숙사에서 살던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생 때 하숙집과 기숙사, 외국에선 플랫하우스를 전전하며 혼자 살던 삶이 익숙했던 내게 부모님과의 삶은 허용되지 않는 자유로 인해 숨이 턱 막힌다 했다.
딸이라 위험하다는 이유로 대학시절에도 없던 통금을 지켜가며 직장생활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며 친구들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고 나서 자연스레 독립하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했다. 이후 독립을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마음속에선 부모님께 독립하고 싶다고 말하자는 '나'와 부모님께 독립하고 싶은 이유가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어서라고 하면 자신들을 내가 짐처럼 여긴다 생각하지는 않을지 염려되어 말리는 '나'가 대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에게 이 집이 싫은 게 아니라 느낌상 내가 독립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그런 내게 "독립 선언하기 딱 좋은 날일세"하며, "그래, 혼자 살 때가 왔지 난 우리 딸 잘 살거라 믿는다." 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물론 우리 엄마의 과보호와 나를 향한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어느 정도 예감은 했지만 독립을 선언하고 난 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근심과 걱정으로 시들어갔다. 사람에게, 그것도 어른에게 시든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생함은 하루가 다르게 얼굴에서 사라져 갔으며 '이 위험한 세상에 우리 딸이 혼자 나가 산다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구나'는 엄마의 고민이 얼굴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자녀가 독립을 선언할 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건 엄마가 느끼는 서운함, 섭섭함, 공허함 이 3가지 슬픔이라 하더니,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이상 엄마의 기분을 풀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월에 독립을 선언하고 실제론 6월부터 집을 구하러 다녔는데, 두 달 정도는 엄마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던 것 같다. "독립하고 나서도,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올게"라는 감언이설로 설득하는 것도 모자라 엄마에게 "하루에 몇 번씩 통화하겠다"는 마치 대통령 선거 공약 같은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늘어놓았다.
평소에도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아니다 보니 엄마를 달래는 건 여기가 마지노선이라 생각했고, 1년만 나가 살아본 다는 시한부 인생을 스스로 선언한 뒤 6월부터 집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집을 찾게 되어 7월 22일에 새로운 보금자리였던 오피스텔로 이사할 수 있었다.
독립해서 회사 근처로 이사 온다는 내 말에 직장 동료들은 부모님 곁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거라며 왜 독립하려는 지 내 결정을 의아해했다. 집에서 계속 살면 물론 생필품이나 식비 등 생활 전반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보호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집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다 보면 충족되지 않는 뭔가가 늘 마음에 남았다. 난 그것이 자유라 생각했다.
한밤 중 치킨이 먹고 싶을 때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켤 수 있는 자유
갑자기 어디론가 불쑥 드라이브를 가고 싶을 때, 운전을 말리는 부모님을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래서 나는 자유를 찾아, 부모님에게 예속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독립을 선택했다.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아 자취가 결정된 후 Vlog나 집 구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유튜버들의 채널을 열심히 구독했다. 타인의 독립 경험담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또는 저래야지 하며 스스로 의무와 책임을 규정했다.
그러나 막상 독립하고 나니 독립을 결정하기 전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외로움'이었다. 평생 타인과 어울리고 중심이 되길 원하는 ENTJ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의 감정을 독립하고 나서 퇴근 후 우두커니 컴컴한 집에 들어설 때 느끼고 말았다. 새로운 것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어본 적은 부모님과 살 때는 생각도 못해본 것이었고 퇴근 시간에 전등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은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샤워를 끝마친 후 식탁 의자에 앉아 '나 혼자 산다'를 보며 맥주를 홀짝이는 내가 전자레인지에 비춰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자유를 실컷 만끽하느라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해 보였다. 내가 혼자 떠들지 않는 이상 텔레비전 마저 켜 놓지 않으면 적막이 파동처럼 집 안을 울리는 듯했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텔레비전을 계속 켜놓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어떤 이들에게 이렇게 외로움을 토로하고 나면, "그니깐 집에 있을 때 잘하지, 지금이라도 집에 들어가"하고는 나를 나무랐는데, 친한 친구들이니 다 나 잘되라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그들의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왜냐면 이 정도의 자유를 누리고자 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고 나는 그것이 돈을 아끼거나 저축일 줄 알았지만 현실은 역시나 예상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을 없애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자취하면서 본가에 더 자주 간 것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대면 모임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냥 아무런 노력 없이 홀로 어쩔 때는 외로움을 느끼고 또 어쩔 때는 독립으로 부여받은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살았다.
독립을 망설이고 있는 한 직장 선배가 내게, "독립하면 좋은 점이 무엇이고, 후회하는 건 없나요?"라고 질문했다. 그 선배에게 나는 독립해보고 싶을 때, 일단은 해보고 혼자 사는 게 본인에게 맞는지 판단해볼 것을 추천했다. 무엇이되었든 해보지 않으면 자신에게 맞는지 우리는 영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을 해야겠다고 백날천날 빌고 또 간절히 소망해봤자, 단 한 달이라도 나와서 혼자 살아보지 않으면 본인에게 이 삶이 맞는지도 스스로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독립을 하고 싶을 때는 독립할 것. 그렇다고 해서 전 국민 독립하기 프로젝트도 아닌 이상 독립을 권유할 수는 없지만 독립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독자분들이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