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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Aug 16. 2020

독립 후 달라진 삶에 대하여

조금 더 나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독립하게 된 순간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독립 후 달라진 삶에 대하여 이 한 문장보다 정의를 더 잘할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집과 회사를 오고 가는 쳇바퀴 같은 삶에 지쳐,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28년 보다 혼자 살게 된 지 3주가 지난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를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하기 시작했으며 나만을 위한 가구들로 "내 공간"을 꾸미고 있고 하루 일과를 철저하게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 넣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매월 발행되는 매거진의 독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편집장처럼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래서 너 지금 행복하니, 만족하니, 즐겁니?
밤마실을 떠났던 날의 모습

대답이 Yes라면 즉시 머리에 [다음에도 해볼 것]을 입력한다.

위험하다고 생각해 본가에서 살 땐 나가지 않았던 밤마실도 그중의 하나. 집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슬리퍼 대충 신고 나가 맞이한 한여름밤의 바람이 그리 시원할 줄이야.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향신료나 외국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하면서 이게 내 입맛에 맞나 실험해볼 땐 이 모든 것들이 재밌고 새로워 웃음이 난다.


대답이 No라면 즉시 머리에 [다음에는 절대 하지 말 것]을 입력한다.

매번 지하철을 타고 본가와 회사를 왔다 갔다 하던 시절에는 만원 지하철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퇴근길 약속은 집 근처가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때는 당연해서 몰랐고, 지금은 당연하지 않아서 알게 된 일. 피하고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할 필요 없다는 것을 이제야 서서히 깨닫는 중이다.




독립 후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천천히 생각해보며 몇 가지를 적어봤다.

청소하는 것은 여전히 그럼에도 힘들다
01. 나는 생각보다 000한 사람은 아니었음을/000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요리보다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 보는 데 더 정신을 빼앗기는 사람, 외로움을 잘 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사람, 항상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건만 사실 알고 보니 굉장히 집순이였던 사람. 이 모든 사람이 나라는 인간의 찯된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생각 끝에 올려다본 하늘의 모습
02. 잉여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 의도치 않게 생각이 많아졌다.

출퇴근 길 왕복 약 2시간 30분을 길 위에서 허비하고, 집에 돌아가면 자는 시간이 아까워 기본 12시, 1시까지 침대에서 스마트폰 하며 시간을 허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흘려버린다 하더라도, 시간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의도치 않게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미래에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부터 내일 아침은 뭘 먹을까 하는 가벼운 생각까지. 그 와중에 멍도 잘 때리고. 다행인 건 부정적인 생각은 자연스레 지양하고 있다는 것.


나의 닭가슴살 샐러드
03. 수면 시간이 늘어난 만큼, 아침을 먹는 만큼 삶의 만족도는 수직 상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곧내(제목 곧 내용), 요즘 아주 잘잔다. 회사와 집과의 거리가 7분이 채 안 걸리니 출근 1시간 전에만 일어나도 아침 먹고 집안일 좀 하고 씻고 옷 입고 화장하고 길을 나서도 시간이 충분히 남아 사내 카페에서 커피 한잔까지 사들고 간다. 회사 근처로 오피스텔을 얻은 덕분에 어깨에 돌덩이처럼 느껴지던 피곤함도 사라진 것 같다. 역시 옛말에 틀린 것 없다더니.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것보다 보약이 없다는 말. 삶의 만족도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택배 한번 받았을 뿐인데..
04.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 살면서 마트 온라인 몰이나 쿠팡, 마켓 컬리를 자주 이용하곤 하는데 택배를 한번 시킬 때마다 그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지 자취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을 때는 모르던 음식물쓰레기의 세계를 접한 뒤로 밥을 먹을 때마다 잔반이 나올까 봐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만약 가정에서 음식물쓰레기나 재활용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발명품을 만든다면 그 사람은 노벨상을 받겠지.


어느 날 밤 길을 지나며
05.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해 더 아끼고 보살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다. 시집가기 전까진 부엌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 덕택에 집안일과는 담을 쌓고 살아 감사하게 생각하는 한편, 결혼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집안일을 잘하게 될 수는 있을까 걱정도 앞섰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투입되자마자 생각보다 잘 해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해내고 있는 만큼 더욱 나 자신을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일 듯싶다.




앞으로 나의 삶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내가 행복하다는 것. 이 행복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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