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라이브커머스 이야기 (7)
홈쇼핑 PD가 출근할 때부터 많은 TV모니터를 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로비에서부터 시작해 엘리베이터 안을 거쳐, 사무실로 들어올 때까지 시선을 돌리는 곳곳에 채널별 방송화면이 보입니다.
주르륵 이어 붙은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호스트의 모습들은 피아노 건반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킬 때가 있습니다.
주로 방송을 진행하는 호스트가 색다른 시연을 하거나,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소개할 때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를 떠올려보면 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호스트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상품 설명을 잘해서가 아니라 고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끌어들이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쇼핑호스트라고 하면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비주얼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조금만 함께 방송을 하다 보면 생긴 것은 역량과는 별로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얼굴은 정말 예쁜데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부족해서 중도 하차하는 경우도 있고, 생김새는 평범한 편인데 일류 호스트가 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호스트는 비주얼적인 부분보다도 방송 센스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발음, 발성 같은 것은 기본이고 카메라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멘털, 순발력, (시연을 위한) 핸들링 능력, 어휘력 등등이 방송 센스에 해당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연출하다 보니, 유능한 모바일 라이브 호스트는 TV홈쇼핑과 다른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점입니다.
그럼 역량이 뛰어난 라이브커머스 호스트는 어떤 특성을 갖추고 있을까요?
이 말은 쉽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동을 많이 하는 근육질 남자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호스트도 있고,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호스트도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한 딸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호스트도 있고, 현명하게 육아하는 엄마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호스트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신만의 콘셉트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유능한 호스트들은 메타인지(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ㆍ발견ㆍ통제하는 정신 작용)가 발달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콘셉트를 그렇게 잡아간다 한들, 실제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능가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라이브커머스는 모바일의 특성상 고객의 채팅이 방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라이브커머스 호스트는 시시각각 올라오는 고객의 채팅에 응대하면서 방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순발력이 있고 경험이 조금만 있는 호스트라면 채팅에 자연스럽게 응대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안될 것입니다.
정말 문제는 별의별 채팅 내용 중 어떤 내용을 어떻게 응대해서 방송에 녹여내느냐입니다.
제 경험상 뛰어난 호스트와 평범한 호스트는 이 부분에서 갈립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제품을 구매했다는 채팅을 올렸을 때 “감사합니다. ****고객님. 좋은 선택 하셨네요” 수준에서 응대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간혹 “감사합니다. ****고객님. 혹시 왜 주문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식으로 되묻는 호스트가 있습니다.
그럼 그 질문을 받은 고객은 자신의 아이디가 불렸으므로 대개 구매 이유를 추가로 올리는데, 그 호스트는 다시 그 고객의 구매 이유를 가지고 왜 이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지로 승화시킵니다.
결국 고객과 소통을 함과 동시에 그 고객으로 하여금 제품의 장점을 소개하는 역할도 하게 하면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고 있다는 분위기까지 연출하게 됩니다.
유능한 호스트는 이렇게 채팅 하나로 일석삼조의 효과까지 끌어내기도 합니다.
라이브커머스는 가격이나 프로모션의 혜택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모바일을 주로 활용하는 고객은 아무래도 가격 비교에도 능한 경우가 많아서, 조건이 좋지 않을 경우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 탓입니다.
그래서 특집 같은 방송이 많은데, 모바일 스튜디오의 규모나 제작비의 여건상 특집 분위기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유능한 호스트는 교묘하게 특집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이를 테면 SALE 방송의 경우 단순히 “오늘 OO특집이므로 얼마의 할인된 가격으로 드립니다”가 아니라 이 SALE을 왜 하게 됐는지, 왜 이러한 특집 방송을 하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전달합니다.
그러한 스토리는 없을 때보다 있을 때 훨씬 진정성 있게 들립니다.
때에 따라서는 함께 진행하는 호스트와 짧은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상황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고객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오늘 방송의 특별함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함이란 단순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겸손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매방송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모두 쏟아붓기 위해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러한 겸손함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해봤던 상품이라든가, 잘 아는 상품인 경우 준비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라도 방송은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고 매출도 잘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만족하는 방송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에 함께 하는 PD와 스태프의 의견도 경청하고 같이 방송 준비를 합니다. 규모가 작은 모바일 방송이라 해도 혼자만의 욕심만 가지고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경력이 짧은 호스트일수록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많고 노련한 호스트일수록 함께 하는 스태프들과의 관계나 스튜디오 분위기까지 신경을 씁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는 스스로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오게 됩니다.
유능한 호스트들은 항상 방송에 자신의 열정을 드러내면서, 주변 스태프들과 친화력 있게 스며드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만, 사실 PD의 입장에서 쇼핑호스트라는 직업을 관찰해 보면 독특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방송인인 듯 하지만 연예인은 아니고, 세일즈맨인가 싶지만 영업사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뒤집어보면 그 직업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호스트라는 직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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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 가는 비주얼, 체형, 어휘력, 발음, 발성, 설득력, 순발력, 이해력, 성실성 등등… 갖추어야 할 덕목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사석에서 호스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각자의 자부심이 대단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브커머스 매출 규모가 TV보다 작다고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어요. TV와는 달리 실수를 하면 커버가 안 되는 시스템이라 오히려 준비를 더 해야 하거든요."
후배 호스트의 말을 떠올리면서 건반처럼 늘어선 화면들을 보고 있자니, 피아니스트의 완벽한 연주가 연상됩니다.
어쩌면 쇼핑호스트는 실수 없이 자신만의 방송을 연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