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편말 번역가
우리 가족은 수영을 좋아한다.
섬나라 뉴질랜드에서는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수영에 익숙하게 키운다. 우리 아이들도 이제 웬만한 영법은 할 줄 안다. 남편은 한국에서 자랐지만 수영을 꽤 오래 해왔다.
문제는 나다. 수영이 재밌지 않고, 여전히 무섭다.
초등학교 때 키판을 붙잡고 레인을 오가던 중, 겁 없이 깊은 곳으로 갔다가 키판을 놓친 적이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는데 아무도 날 보지 못했다. 당황과 공포가덮쳤고, 몇 번 더 허우적거리다 바닥을 세게 차고서야 레일을 붙잡고 돌아올 수 있었다. 놀란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울었지만 그날의 일은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었다. 그 이후로 깊은 물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다시 수영 수업에 도전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무섭다.
그날도 우리는 수영장에 놀러 갔다.
아이들은 어린이 풀에서 신나게 놀고 남편과 나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큰아이가 벌떡 일어나 내 쪽을 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것 같아 나도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 발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수건을 들고 아이를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젖은 몸으로 떨고 있는 아이의 어깨에 수건을 둘러주고 화장지를 찾아 피를 닦았다. 어디에 부딪혔는지 발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응급처치실로 데려가 직원의 도움으로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였다. 아이는 내 옆에 앉아있어야 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까지, 남편은 그 모습 그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 왜 나만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이 사람은 평온한 걸까?'
머릿속에 번역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돌려도 해석이 되지 않았다. 물음표만 떠오르고, 머릿속은 까맣게 물든 느낌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이런 일일수록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자칫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 침착해야 했다.
남편의 생각은 이러했다.
'수영장에서는 코피 나 작은 상처가 나는 일이 의외로 흔한 일이다. 아이 표정과 행동을 봤을 때 큰일이 아닌 것 같았고 본인보다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나 움직이기에 내가 더 할 일은 없어 보였다.'
아, 맞다. 우리는 많이 다르지.
수영장에서의 경험부터 생각의 기준, 행동하는 속도까지 모두 달랐다.
둘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남편의 방식이 이해되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INFJ의 특성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묻지 않았더라면 서운함이 쌓였을 테고, 남편은 그것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솔직히 서운하다고 말했다. 가족인데 너무 무관심해 보였다고.
관심의 표현에 목마른 나와 달리 무뚝뚝하고, 말 없는 남편은 내가 서운하다고 조잘거리면 눈을 지그시 감는다. 피곤하다는 뜻이다. 어떤 날은 정 없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나도 아니다. 더 장난치고, 매달리며 말로 표현 좀 하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머릿속 번역기를 돌린다. 남편은 그는 이런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부부는 정답을 찾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며 살아가는 동반자다.
번역 결과
아이가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 처리를 잘했네. 나 없이도 이곳에서 잘 해결하고 다니니 든든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