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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Oct 26. 2023

3년 동안 봤잖아?!

3년 친구 코끼리 덤보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에는 패션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행이 바뀔 때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옷이나 신발을 바꿨다. 패션 관련 회사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멋진 옷을 입으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된 듯한 그 기분에 항상 반듯하고, 예쁜 옷을 챙겨 입었다.


뉴질랜드는 참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나라이다. 물론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길거리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패션은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이다. 예쁜 옷을 좋아하는 나는 한동안 계속 예쁘게 입고 다녔었다. 하지만 아이들 학교 픽업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공 들일만한 시간과 일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맨투맨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가 요즘 나의 유니폼이다. 치마를 입는 날은 친구들을 만나는 특별한 날 가끔?!


어느 날, ZARA에 갔다가 귀여운 덤보 맨투맨티를 샀다. 약간 스크래치 난 듯한 디자인인데 그냥 편하게 입으려고 샀던 옷이다. 3년 동안 덤보와 함께 반바지, 청바지 바꿔가며 입었고, 날이 쌀쌀해지면서 옷 장에 있던 덤보를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 그 옷은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코끼리 그림이 벗겨졌잖아. 잘못 빨았나?"

"..........?"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3년이 넘어가는 이 옷을 처음 본 걸까? 그동안 몰랐단 말인가? 장난치는 건가?


연애할 적에는 달라진 화장법을 캐치했던 사람이었다.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했었고, 나한테 관심도 많다고 느꼈었다.


"원래 이런 옷이잖아. 나 이 옷 3년째 입고 있는데, 몰랐어?"

"아. 그래? 원래 그런 옷이야?" 하고 남편은 방을 나갔다.

"................"


자꾸 뭔가 게임에서 진 듯한 찝찝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 대단하게 서운한 일도 아니고, 큰 일도 아닌데 뭔가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이런 무관심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면 피부가 좋아졌다고 했고, 오랜만에 머리를 올려 묶으면 예뻐졌다고 했다.


예전에 눈썰미 좋던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냥 느낌으로 달라진 것을 아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너무 예민해서 '이걸 입어봐라, 그것은 잘 안 어울리니 이것을 입어봐라' 하는 것보다 편한 것 같다. 나도 적당한 무관심에 익숙해졌나 보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뭐라고? 몰랐어?"라는 말 대신 "아.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정도로 대답을 할까 생각 중이다.


10년 이상 된 부부의 자연스러움이라 생각하려 한다.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지만 굳이 억지로 붙어있을 시간도 아니니 말이다.


번역 결과

옷 디자인이 좀 오래돼 보이는데, 쇼핑가 볼래?


(*번역 오류라면 다음 주에 나 혼자 쇼핑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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