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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Oct 21. 2023

수영장에서 생긴 일

남편 행동 번역가

우리 가족은 수영을 좋아한다.

섬나라의 특성상 이 나라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가르친다. 우리 아이들도 이제 웬만한 영법은 할 줄 알게 됐다. 남편은 한국에서 자랐지만 수영을 꽤 오랫동안 해왔고, 심지어 전공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만 수영이 재미없고, 무섭다.

초등학생 시절 막 키판을 붙잡고 레인을 왕복할 수준일 때쯤, 겁 없이 깊은 곳까지 갔다가 당황하며 키판을 놓치는 일이 생겼다. 나는 물에 빠졌고 허우적거렸지만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죽겠다 싶었는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발로 땅을 세게 차며 올라왔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배영으로 돌아왔다. 너무 놀라 엄마에게 달려가 울었지만 별 일 아닌 것으로 무마됐다. 그 이후로 나는 깊은 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트라우마를 없애려고 수영 수업에 다시 도전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그날도 우리는 실내 수영장에 놀러 갔다. 아이들은 어린이 풀에서 온몸을 움직이며 놀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큰 애가 물에서 일어나 나를 쳐다봤다. 순간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 발에서 피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수건을 들고 아이를 물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젖은 몸으로 떨고 있는 아이 어깨에 수건을 둘러주고 화장지를 찾았다. 급한 대로 수건으로 피를 살짝 닦아내고 살펴봤다. 어딘가에 부딪쳤는지 상처가 나 피가 나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처치실로 갔다. 직원은 다친 발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다. 아이는 결국 내 옆에 앉아있어야 했다.


아이가 다친 순간부터 돌아와 자리에 앉은 순간까지 남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 왜 나만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이 사람은 왜 변함이 없는 거지?'


시작됐다. 내 머릿속에 번역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번역해보려고 해도 안 됐다. 물음표만 떠오를 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이러스라도 걸린 듯 머릿속이 까맸다. 안 되겠다 싶어 직접 물어봤다. 이럴 때 일 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생각은 이랬다. '수영장에서 코피나 상처가 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큰일이 아니고 흔한 일이다. 아이의 표정이나 행동을 봤을 때 큰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본인보다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나 마무리를 하는데 내가 더 움직일 일은 없어 보였다.'


아, 맞다. 우리 다르지?!


달랐다. 그간 살아오면서 수영장에서의 경험도 달랐고, 생각도 달랐고, 움직이는 속도도 달랐다.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게 됐다.(타인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것 또한 INFJ의 특성) 만약,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면 나는 서운함이 쌓였을 것이고, 남편은 그것조차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가족인데 너무 관심 없어 보이는 것 아닌가?


사랑과 관심에 목마른 나와 달리 무뚝뚝하고, 말 없는 남편은 내가 서운하다고 조잘거리면 눈을 지그시 감는다. 피곤하다는 뜻이다. 어떤 날은 정 없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나도 아니다. 더 장난치고, 매달리며 말로 표현 좀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니, 나는 오늘도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고 번역기를 돌리며 지내고 있다. 남편은?! 남편은 이런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변역 결과

큰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 처리를 잘했네. 나 없이도 이곳에서 잘 해결하고 다니니 든든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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