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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 잘 못 빨았어?

3. 남편말 번역가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패션과 무관심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적,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행이 바뀔 때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옷이나 신발을 바꿨다. 패션 관련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멋진 옷을 입으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항상 반듯하고 예쁜 옷을 챙겨 입었다.


반대로 뉴질랜드는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나라다.
물론 관심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길거리에서 가장 흔한 옷차림은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다. 예쁜 옷을 좋아하는 나는 환경에 맞지 않아도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신경 써서 입었다. 하지만 아이들 픽업과 집안일이 전부인 이곳 일상에서 패션은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맨투맨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가 요즘 나의 유니폼이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특별한 날에만 가끔 신경을 쓸 뿐이다.




3년 전, ZARA에서 덤보 맨투맨 티셔츠를 샀다.
옷 자체가 살짝 스크래치 난 듯한 디자인이다. 그동안 덤보와 함께 반바지, 청바지를 번갈아 입었고, 최근 날이 쌀쌀해지면서 오랜만에 옷장 속 덤보를 꺼내 입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말했다.
"그 옷은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내가 물었다.

"코끼리 그림이 벗겨졌잖아. 잘못 빨았나?"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원래 스크래치 난 디자인인 것을... 3년째 몰랐다고? 유니폼처럼 자주 입었는데? 장난치는 건가?’


"원래 이런 옷이잖아. 나 이 옷 3년째 입고 있는데… 몰랐어?"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아. 그래? 원래 그런 옷이야?"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을 나갔다.

'................???'





연애할 적에는 달라진 화장법도 캐치하던 사람이었다.
눈썹 색, 아이라이너 모양까지 구분했다. 눈썰미가 좋고, 나에게 관심도 많다고 느꼈었다.

‘분명히 같은 사람 맞는데… 이렇게 변할 수 있다고?’


자꾸 게임에서 진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든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기분이 계속 묘하게 좋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예민하게 ‘이건 입어봐라, 저건 안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보다 편한 것 같다.
나도 적당한 무관심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존심 상하지 않기 위해 무관심에 익숙한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뭐라고? 몰랐어?" 대신 "아.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정도로 받아넘길까 생각 중이다.


10년 이상 된 부부의 자연스러움이라 생각하려 한다.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도, 억지로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사랑은 특별한 말보다 함께 있는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번역 결과

“옷 디자인이 좀 오래돼 보이네. 쇼핑 갈래?”
(*번역 오류라면, 다음 주엔 나 혼자 쇼핑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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