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냥, 좋았다.
하루가 다르게 말 문이 터져 언어발달을 눈으로 보여주고, 귀로 들려주는 아이에게 책 읽기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놀이 방법이었다.
그렇게 사들인 프뢰벨 전집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 책장에 꽂았다. 한 권씩 읽어나가며 다 읽은 책은 바로 꽂아 두었는데, 이 방법이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구분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양치 후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었다. 내성적인 우리 아이의 처음 시작은 창작 동화였다. 다양한 감정과 일상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유치원에 처음 가서 좀 떨렸나 봐. 엄마도 처음 유치원 갔을 때 떨렸었어.”, “엄마가 다른 친구만 칭찬해서 샘이 난 걸까?.”, “엄마가 안아줘서 마음이 편안 해졌겠다.”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읽는 도중 잠이 들곤 했다. 물론, 책 한 권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잠드는 날도 있었지만.
그러던 책 한 권이 두 권이 됐고, 두 권이 세 권이 됐고, 어느 날은 10권을 넘기도 했다. “여보. 나 오늘은 14권을 읽었어.” 방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속삭이듯 남편에게 얘기하고는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신곤 했다.
무조건 많은 양의 책을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는 둘이 침대에 누워 여러 친구들의 감정과 상황을 바라봤다. 따뜻하고, 조용하고, 포근한 이불속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재미있고, 유쾌했으며 대부분 해피앤딩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그 시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첫째와 둘이 2년간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그 후로 둘째가 태어나면서, 해외로 이사를 오면서 하루에 읽은 책의 수가 5권 미만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둘째가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우리는 셋이 되어 다시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첫째는 창작동화를 먼저 시작했지만, 디즈니 공주 시리즈, 뽀로로, 도라 등 관심에 따라 다른 책들을 보기도 했다. 성향이 다른 둘째는 자연관찰이나 과학동화를 집중해서 보던 아이라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기 시작했다. 첫째와 나는 공룡이름을 알게 됐고, 자동차 종류를 알게 됐다. 둘째는 내용도 모르는 디즈니 공주들의 이름과 노래를 다 외우고, 옥토넛에 빠져 살기도 했다.
책 육아에 있어 규칙과 순서는 없는 것 같다.(전문가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나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같이 공유했고, 대화했다. 거기에 상상을 더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지어내고는, 우리끼리 웃고 떠들었다.
내가 처음부터 9년, 10년을 계획하고 시작했다면 책 육아는 1년도 채 안돼 진작 끝이 났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꾸준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닌 셋 이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못했을 것 같다. 매일 밤,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웃는 그 시간이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노력이었고, 우리는 그게 그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