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게 된 사실
그동안 의식조차 하지도 않았던 책의 권수를 연재 글을 시작하면서 계산해 봤다.
평균 하루 10권의 책* 평균 일주일에 6일* 52주* 9년,
두 달 후면 10년이니 어림잡아 계산하면 3만 권 정도를 읽어준 셈이다.
3만 권이라니..
이렇게 수치화해 보니 내가 마법 같은 일을 한듯싶다. 단군신화에도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티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2만 8천 권을 읽은 나는, 또 우리 아이는 뭐가 달라졌을까?
우선, 나는 내가 책을 재미있게 잘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 책을 많이 읽으면서 동화구연처럼 연기도 늘어갔다. 목소리의 강약 조절과 의성어, 의태어, 그리고 의인화한 표현까지. 책이 아니라 대화를 하더라도 책 읽을 때와 비슷하게 표현하면 집중하는 아이들의 눈을 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부분 직전에 속삭이고 뜸을 들이면, 아이들의 재미있는 반응들을 볼 수 있다.
둘째, 우리 아이의 관심사를 알게 됐다.
첫째는 창작동화를 시작으로 디즈니공주, 프라이머리 입학 후 주니어 때는 트리하우스와 로알드 달 시리즈, 제로니모스틸턴, 해리포터 등의 픽션, 그리스로마 신화와 미술 관련 서적, 시니어가 된 지금은 OO다이어리 시리즈나 베이비 시터 클럽 등 또래 친구들의 현실을 기반으로 표현한 책들을 재미있게 본다.
둘째는 자연과학을 시작으로 공룡, 지구, 화산 등의 책을 주로 보고, 주니어가 된 지금은 스파이더맨 등의 히어로 책이나 창작동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함께하면 대화를 통해 아이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셋째, 잊고 있던 지식들과 아재개그가 깨어났다.
창작동화(프뢰벨, 웅진, 그레이트북스)부터 과학동화, 수학동화, 만화책(흔한 남매, 엉덩이탐정), 브리태니커, 한국사, 세계사, 지리(교원), 정치경제(교원), 위인전, 그리고 그리스로마신화까지.
다양한 분야를 읽어가며 어릴 적 배웠던, 시험 때문에 무작정 외웠던 내용들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니 오랜만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또 만화책을 같이 읽으며 아재개그와 나의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신기하게 듣곤 한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들이 옛날 식 농담을 한 번에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이다. 한번 더 풀어 설명해 줘야 한 박자 늦게 웃음이 터진다. 내가 아이들의 영어 조크를 한 번에 이해 못 하듯이, '그게 왜 웃긴 거야?'
넷째, 브런치스토리, 밀리로드 작가가 됐다.
어린이 책뿐만 아니라 내 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이제는 내 생각을 글로 적어보며 아웃풋하고 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고, 또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독자들이 그만큼을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많이 고민하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 아이에 대한 변화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 변화하고 커가는 아이에게 어떠한 기준을 삼고 그 결과를 기대하며 바라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목표나 결과를 기대하고 이루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눈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단점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부분을 믿어보고자 한다. 엄마로서의 걱정과 기대는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2만 8천 권이라는 책과 시간.
아이와 둘이서 책 보며 놀고, 책 보다 잠이 들고, 셋이 되어서는 서로의 책을 읽어달라며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달래 가며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여행 갈 때도 한. 두 권은 꼭 챙겨나갔고, 바닷가나 공원 갈 때 들고나가기도 했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봤고, 첫 유튭도 책을 읽어주는 계정으로 시작했다.
글로 그동안의 모습을 적어보니 책은 분명 나,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함께 있었다. 실제로 집에는 책이 별로 없다. 첫째 방에 4단 책장 1개, 둘째 방에 작은 4단 책장 1개, 거실에 작은 4단 책장 2개가 전부다. 책을 들이면 한 번 같이 보고, 그 후 아이들이 스스로 보다가 다른 책으로 바꿔주었다. 책을 바꿔주는 적절한 시기가 독서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포인트이자 연결다리인 것 같다. 그리고 첫째가 속독을 시작하면서 책을 사주는 간격이 매우 짧아져 이제는 원하는 책을 빌려보거나, 본인의 용돈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만 구매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우리 아이들이 핸드폰은 안 보고 책만 보는 것으로 오해는 마시길. 우리 아이들 책도 좋아하지만 유튜브 보는 것도 좋아하고, 게임은 언제 허락해 줄지 손꼽아 기다리는 평범한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