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말고 고추 심는 날

by 지금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5월은 어린이날 우~리들~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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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점심시간 학교 방송으로 어린이날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아이들도 따라 부릅니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떠서 내려오질 않네요.




어른이 된 지금 저의 어린이날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어린이날은 '고추 심는 날'입니다.


어린이날은 학교를 가지 않는 휴일이며 모두에게 즐거운 날이겠지만 제게는 그냥 고추 심는 날이었습니다.




어린이날은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전날 밤부터 온 가족이 일찍 잠에 듭니다.


아침을 먹고 온 가족이 고추를 심으러 갑니다. 경운기에는 고추 모종이 가득합니다. 경운기 뒤를 따라 가족이 두 줄로 걸어갑니다. 손보다 더 큰 목장갑을 끼고, 발보다 더 큰 장화를 신고 경운기를 쫓아갑니다. 장갑 낀 손에는 호미를 들고 가는 사람, 물뿌리개를 들고 가는 사람, 구멍을 내는 기구를 들고 가는 사람 제각각입니다. 이때는 그래도 기분이 좋아 경운기를 따라 수다를 떨며 쫓아갑니다. 이상하게 고추 심는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지요. 다들 꽃구경 가기에 바쁜 그런 날씨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고추 심는 날이 더 싫었던 것 같습니다.




고추 심는 날은 수원 사시는 작은 아버지도 오십니다. 언니랑 저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까지 고추를 심으러 밭으로 출동합니다. 집과 가까운 밭에서 고추를 심고 있노라면 친구가 저를 부릅니다.


" 00야, 놀~자"


저희 아빠는 저를 부르러 온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00야, 너도 같이 고추 심자"


친구들은 질색을 하며 도망갑니다.


어린이날인데 친구들은 놀고 저는 고추를 심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동생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동생들은 더 어린 나이에 고추를 심었었네요. 동생들이 저보다 더 놀고 싶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부모님은 항상 자식들에게 다양한 일들을 시키셨습니다. 4월의 못자리, 5월의 고추심기, 5월의 모내기, 6월의 잡초 뽑기, 7월의 복숭아 따기, 8월의 고추 따기 등등 계절마다 골고루 다 시키셨습니다. 누가 보면 다양한 체험을 해서 좋았겠어라고 할 수 있지만 저희는 체험이 아닌 일이었지요. 다행히 부모님은 일을 하면 알바처럼 용돈을 주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빠께 물었습니다.


"아빠, 왜 이렇게 일을 많이 시켜요. 친구들은 매일 노는데 우린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 너무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람은 어떤 일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해서 살아가야 되거든"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빠에게는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저에게는 큰아버지죠. 아빠 말에 의하면 큰아버지는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고 공부만 했다고 합니다. 매일 공부만 해서 좋은 대학도 졸업했고 좋은 직장도 입사했지요. 그런데 직장에서 일을 잘못 처리하여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지요. 퇴사를 한 후 다른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어 백수가 된 큰아버지는 40대부터 계속 백수이십니다. 큰아버지 때문에 아이들을 저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들은 다양한 일을 아주 많이 하고 자라게 된 것이지요.




어릴 땐 원망도 되었지만 아빠의 말에 인정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저희 형제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일을 어려워하지 않는 부분이 많거든요. 언니도 동생도 자기 사업을 하는데 일 처리가 아주 빠릅니다. 목표와 계획이 세워지면 거침이 없습니다. 예상외의 일이 발생해도 '이렇게 하면 되겠네!' 그냥 쓱쓱 처리합니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날이 고추 심는 날이 인생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나쁜 날도 아니었구나. 가족이 함께 1년 고추 농사를 시작하는 날이었구나. 힘들었지만 몸으로 많이 체득하는 날이었구나.


아빠의 큰 그림을 나이 50에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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