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간이 '천천히 가기' 불가능한 이유

반려견 또복이가 알려주는 것들

당신과는 천천히

- 장범준의 노래

퇴근 시간 전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집에만 오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쉬고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사랑의 꿈에 취해 뒤척이는 밤이라도

당신과 함께 순간만은 천천히

'벚꽃 엔딩'으로 유명한 장범준의 노래 중에 ‘당신과는 천천히’라는 노래 가사다. 노래의 주인공은 행복한 시간, 즐거운 시간, 기쁨의 순간은 빨리 흘러가는 데 하기 싫은 일, 지루한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간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야속하기만 한 심정이라고 한다. 연인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는 시간, 늦은 밤 그와 함께 통화하는 시간은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항상 아쉬움만 남는다고 한다.

요즘 나에게는 또복이와 함께하는 순간이 그렇다. 또복이와 산책하는 순간, 또복이와 함께 노는 시간, 또복이를 쓰다듬는 순간, 또복이가 다가와 내 옆에 등을 대고 엎드려 있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그 시간들은 노래 가사처럼 '너무 빨리 흘러서 아쉬워 제대로 못 놀아주고 못 지낸 느낌'을 갖게 한다.  

'보기도기' 매장에는 또복이 어릴 적 영상이 하루 종일 빔프로젝터를 통해 상영되고 있다. 한가한 시간이면 과거 또복이와 함께 했던 영상들을 쭈~욱 돌려본다. 세상 모든 것들이 궁금했던 '꼬물이' 때의 또복이를 보면 언제 이렇게 컸지 새삼 놀라게 된다. 손바닥 위에 올려도 될 것 같았던 또복이가 이제는 들쳐 업기에도 부담스러운 녀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발견한 게 있다. 한 살 무렵까지의 영상이 두 살부터 네 살 때까지의 영상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사실이다. 회상해 보면 또복이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 더 많고 더 생생한 듯하다. 처음 또복이가 왔을 때 신나고 재미있고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았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행복한 순간이 천천히 가기 불가능한 이유, 시간수축효과

심리학에는 ‘시간 수축 효과’란 게 있다. '시간 수축 효과'란 어렸을 때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끼지만,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는 새롭고 강렬한 감각을 느낄 때 '시간을 매우 잘게 쪼개서 쓴다'라고 한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주변에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넘쳐난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뇌는 '시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우 바쁘게 움직인다. 더 많은 기억들을 저장하고 그 기억들은 조금 더 촘촘히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첫 경험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이 오히려 더 길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먼 훗날 또복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나와 아내가 또복이의 하루하루를 영상으로 기록하려고 하는 이유는 나이 들어 또복이를 추억하고 싶어서이다. 또복이에 대한 더 많은 기억, 더 많은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복이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껴야 한다.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야 한다. 아이러니하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더 많은 기억과 감정을 갖기 위해서는 장범준의 노래처럼 '지금 이 순간이 더 빨리 흐르고 더 안타깝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흐르지만 더 즐거운 시간, 더 행복한 시간, 더 짜릿한 순간을 또복이와 만들어나가야 하는 이유다. 

또복이와 함께 많은 경험을 하고 모든 순간에 집중하며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다. 무심코 보아 넘겼던 또복이의 작은 움직임과 짖음, 표정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싶다. 

또복이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