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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Mar 23. 2024

우울한데 마무리를 짓는 법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안녕하세요. 벌써 10번째 글입니다. 이제 마무리를 슬슬 지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글들을 쓰면서 참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허접한 글을 그래도 열심히 쓰라고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이불킥 할 것 같지만, 어쨌건 써 봤습니다.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우울할 때" 읽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다지 성실하지가 못해서 글에는 우울감과 우울증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은 비록 안 해봤지만, 효과 있는 방법이 어딘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소개한 것입니다. 마음이 고단한데도 제 글을 읽어주신 분에게, 정말 제가 실례를 저지르지 않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우울한데" 쓰게 된 진짜 이유를 써보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만약 우울감이 많이 심하시다면 멈추시고 더 이상 안 읽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얼마 전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유서는 경찰이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어린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남편의 소꿉친구이기도 했던 K는 "우울증"이라는 단어와의 조합이 가장 어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25명의 동창 중 무려 12명이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남편의 모임에 처음 따라갔을 때, 역시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K를 처음 만났습니다. K는 술이 들어가자 너무 자연스럽게도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프리 스타일 랩을 했습니다. K와 남편의 모험담은 하도 들어서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마음에 안 들었던 선생님의 자동차를 번쩍 들어 숲 속에 숨겨 놓았던 일, 16살 때 영국에 놀러 가 네오나치 스킨헤드랑 길거리에서 제대로 한판 붙었던 일 등등. 2미터가 넘는 키, 사춘기 애들에게 절대로 밀리지 않을 미친 스웩의 보유자. 신문사 기자이기도 했던 K는 작은 스쿠터를 타고 독일을 일주하며 연재 기사를 쓰는 여행전문작가로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구글에 치면 "The secret of hapiness is freedom"이라고 적혀있는 커피잔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K의 얼굴이 나오는 부고 기사가 나옵니다.


그게 겨우 재작년 일입니다. 작년 겨울, 저는 자꾸 K 생각이 났습니다. 그 해 여름, 뭘 했으면 달라졌을까. 어떻게 그렇게 몰랐을까 등등. 불붙은 집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절박함이 삶에 찾아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우리가 뭘 안다고.


그냥. 그래도. 그냥 어떤 식으로라도. 


내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라도 위로를 건네고,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해야 할 일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가볍고 경박하고, 우울증이라는 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듣보잡이, 지도 잘 모르는 분야를, 설거지할 동안 팟 캐스트 좀 들었다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좀 읽은 거 가지고 이 것 저 것 짜깁기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게 제가 K를 추모하는 방식입니다. 왜냐면 지금도 저는 K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 속 K는 지금도 그날처럼 맥주병을 들고 랩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쫌 어설퍼도 K는 봐줄 것 같았습니다. 그냥 제 뇌피셜이지만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K는 많이 써야 는다고 하면서 열심히 쓰라고 격려해 줄 것 같았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앤서니 홉킨스가 주연한, 쉐도우랜드라는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가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선생님은 이 글귀를 벽에다 붙여놓으셨대요. "지금의 고통은 과거의 행복이다 (The pain now is part of happiness then. That's the deal.)"라고요. 맞네요. 지금 상실감으로 고통스럽다면, 그건 예전에 충만함을 느꼈었기 때문이겠죠. 지금은 고통스럽지 않다면 언젠간 찾아올 수 있는 미래일 것 같았고요. 그래서 이 글귀를 처음 들었을 때 저도 가슴이 쿵 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의해 제대로 울 수도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더라고요. 이런 분들에게 비싼 커피를 마시면 낫다는 둥, 햇빛을 보라는 둥의 필요 없는 조언은 무례를 넘어 야만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도 없는 고통의 순간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초연함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곱씹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아플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이들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그리고 고통을 극복하는 이들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서도요. 


영화 쉐도우랜드 (1993) 중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떠났을 때.


뭐부터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제가 뭘 안다고.


이 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이 해보자는 저의 손입니다. 이 손을 잡아서 뭐가 된다는 보장은 없더라도, 우리가 진짜 어딘가에서 만난다면 저는 당신을 꼭 안아 줄 것임을 확신하기에 쓰는 글입니다.  제 글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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