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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Apr 09. 2024

한국에 바리바리 뭘 싸간다고?

한국 물가 무서워요

예전엔 한국에 들어갈 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쇼핑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저 멀리 한국에 사는 지인들이 어떻게 독일산 제품들을 잘 아는지 궁금했다. 내가 독일에서 한국으로 들고 가야 했던 제품들은 헨켈 쌍둥이칼, 휘슬러 압력밥솥, 슈라멕 비비크림, 발포 비타민 등이었다. 


그리고 휘슬러 압력밥솥을 홈쇼핑 채널에서 특가에 살 수 있는 요즘, 나에게 독일제를 부탁하는 사람은 이제 하나도 없다. 오히려 외국에서 바리바리 싸가는 걸 구질구질하게 생각하는 거 같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친구의 예비신랑이 미국에서 들어오면서 코스트코에서 산 견과류, 비타민, 그리고 샴푸를 검정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꺼내 미래의 장모님에게 드렸단다. 이 일은 우리 동네 어머니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며 잊을만하면 소환되곤 했다. 비타민 까지는 어떻게 이해해보려 하겠는데, 샴푸를 사 왔다고?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가볍게 하는 것을 추구한다. 웬만하면 현지 조달하자는 주의다. 이번에도 세 식구가 큰 가방 딱 하나 가져간다. 그러니 이 가방에는 꼭 필요한 것만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요즘 생각하곤 한다. 먹을 거를 잔뜩 넣어갈까?


우리 집 두 남자는 아주 향토적 입맛을 가졌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허전한 한국 사람처럼 하루에 한 끼 빵을 먹어야 한다. 치즈도 정말 발냄새보다 더 지독한 냄새나는 것(Bergkäse)만 골라 먹는다. 냉장고 김치 냄새가 신경 쓰인다는 분들은 우리 집 냉장고 냄새를 맡아보시길 추천한다. 


어쩌랴. 해외 나가서 느끼할 때 먹으려고 챙겨 놓는 기내식에 나왔던 볶음 고추장처럼, 독일 아들과 남편은 빵이랑 치즈가 생각난다는데. 2년 전 한국 체류 중, 이 분들에게 빵, 버터, 치즈, 그리고 과일을 조달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너무 비쌌다. 체감상 3배 정도?


한국 동네에서 "명장"이 한다는 빵집을 돌아다녀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냥 토스트 구워 먹어."


독일에 사시는 분은 이 말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아실 것이다. 빵에 대해 엄청난 국뽕에 차있는 독일인들은 토스트는 그냥 토스트일 뿐 빵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99년 영국 광우병 사태 이후, 한국 내 유럽 육류와 유제품 반입 금지다. 꼬랑내가 나지 않는 코스트코 미국 치즈에 실망한 두 남자에게 그래도 비싼 거니까 아껴먹으라고 신신당부했다. 가격이 독일에 비해 몇 배가 비쌌지만 심지어 당시 3살이었던 아들까지 하루에 한 끼는 꼭 독일식으로 먹으려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독일 장바구니 물가가 그리웠다. 한국에서 장 볼 때마다 십만 원이 우습게 깨졌다. 특히 한국 사과값은 경악할 지경이었다. 독일에선 공원에 사는 아기 멧돼지들에게 3유로도 안 하는 사과 2kg를 사서 실컷 먹이고 왔는데. 


독일 멧돼지들은 사과를 잘라 주면 잘 먹는다


며칠 전 내가 장 본 것들이다. 15개의 품목을 사는데 11유로 정도 들었으니 만 6천 원 정도이다. 요구르트, 후무스, 강낭콩 통조림, 민트, 유기농 양파와 바나나, 칠리 콘 카르네 용 양념 등을 샀다. 독일 장바구니 물가는 유럽에서도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보조금을 엄청 주기 때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일 소비자들이 쇼핑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가격이라서 그렇다고도 한다. 


알디나 리들 같은 독일 저가 슈퍼마켓의 존재는 독일의 복지 중 하나란 말도 있다. 하지만 저가 슈퍼는 종업원과 생산자들을 쥐어짜는 구조기 때문에 이 말을 한 독일 정치인은 엄청 욕을 먹었다. 참고로 독일 대파 (한국산 보다는 훨씬 작음) 한 단 가격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말씀드리자면 세일할 때는 45센트 정도, 요즘은 65센트 정도다. 천 원 조금 안된다.  버터 가격도 이제 많이 내려가서 인플레이션도 요즘은 좀 잡혔다는 말도 나온다. 

출국 전 냉장고 파먹는 중이니 쇼핑은 간단하게

남편이 퇴근하면서 회사 동료들이 줬다는 봉투에는 돈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냐니까 직원들 몇 명이 한국 가서 화장품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단다. 남은 돈은 가족들이랑 한국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했다고. 참 대단하다. 예전엔 독일제 슈라멕 비비크림 사다 달라고 여기저기 전화가 왔었는데. 내가 그렇게 사다 나르던 독일 비비크림을 발전시킨 한국 비비크림은 이제 전 세계 표준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독일서 가져갈 게 별로 없다. 지인들도 필요한 거 하나도 없단다. 아니 이젠 독일 사람들이 한국에서 물건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시절이 되었다. 


남편은 남은 돈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인 김치 왕만두를  실컷 사 먹겠다며 싱글 벙글이다. 아직도 한국 물가 감을 못 잡는 두 남자들에게 이 번엔 확실히 경제 교육을 시켜야겠다. 


<사진 출처 : 악어 엄마>


사족 : 저도 기차타고 투표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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