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행의 시작
한국행 비행기는 저녁에 출발했다. 그 전날, 아이의 친구들 한 무리가 놀다 가는 바람에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거실에 만든 거대한 기찻길을 치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장난감 기차를 몇 번 밟아가며 대강대강 청소를 했다. 오늘도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열일 하시는 우리집 지렁이들에게 남은 야채와 과일을 주고, 화분에 물을 주었다. 냉장고를 완전히 비우고 두꺼비집을 내렸다. 나중에 보니 큰 가방도 필요 없어서 짐은 기내용으로 작은 거 딱 3개만 가져갔다.
집에 남은 음식들은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공항에 가져가서 먹었다. 유럽은 공항 음식이 참 더럽게 비싸고 맛이 없다. 액체류는 분류해서 지퍼백에 다 넣었는데 따로 꺼내라는 말도 없이 그냥 다 통과였다. 공항 파업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년 전 한국 여행을 가려했던 남편의 동료는 하필이면 출국하는 날 공항 파업이 있었다. 비행은 1주일 뒤로 연기되었으며 시차 적응이 되려 할 때쯤 독일로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네덜란드 KLM 항공사를 탔다. 운이 좋게도 프로모션 기간에 맞추어 표를 구매해서 3명 합쳐서 1800유로가량을 지불했다. 남편은 키가 190cm에 가깝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10시간 넘게 앉아 있는 것을 정말 힘들어했다. 네덜란드 사람들 세계 최장신이니까 좌석 설계도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비행기는 만석이었고, 워낙 표가 싸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남편이 옆에서 끙끙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12시간을 어찌어찌 버텼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의 국제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줄이 갈린다. 20년 넘게 국제 떠돌이로 살고 있는 나에게, 지금도 공항은 여러 모로 참 치사한 공간이다. 우리보다 먼저 온 히잡을 쓴 가족들은 공항직원에게 계속 서류를 보여주며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히잡 가족들 옆 창구로 안내되어 1분도 안 되어 여권 심사가 끝났다. 젊은 아시아 여성이 아닌, 어린아이가 딸린 가족이 되자 나는 그야말로 무해한 존재가 된다. 게이트 앞에서는 항공사 직원이 우리 가족을 손수 찾아 탑승줄 맨 앞에 세워주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2015년, 영국이 아직도 유럽 연합이었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직원하나가 여권을 확인하고 줄을 갈랐다. 독일 사람인 너는 여권만 스캔하면 통과인 문이 10개 있는 이쪽 EU 전용 창구, 한국 사람인 나는 앞에 100명이 줄을 서고 있고 두 사람의 문지기가 너를 기다리는 저쪽 비 EU 전용 출입국 심사대로 가라고 했다.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다 무인심사대로 의기양양 들어가는 백인들을 보며 탄식을 했다. 내가 있는 이쪽 줄은 어찌 피부톤이 다 23호 이상이란 말이냐.
그러다 한국 국적은 유료로 (1년에 80파운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영국 공항 패스트 레인 시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정보를 보았다. 유럽 놈들 더럽고 치사했던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신청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이용하던 버밍험 공항은 여권 스캔하는 기계가 자주 고장이었다. 직원들이 EU/비 EU 줄을 가를 때, 내 한국 여권을 보여주었다. 당시 이런 새로운 규정의 존재를 잘 몰랐던 공항 직원들이 얘기했다. 너는 비 EU니까 저쪽 가서 줄 서. 그러면 내가 한숨을 쉬며 보여줬다. 여기 봐. 한국 사람도 이 줄에 설 수 있거든?
한국에 도착하자 EU 국민 전용 통로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했던 남편이 역지사지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자국민은 이쪽, 외국인인 너는 저쪽에 가서 줄을 서세요. 입국 심사대에서 한국 국적자인 모자는 1분 컷인데 독일 아빠는 20분이 걸렸다. 한국을 경유해서 베트남으로 간다는 유럽 남자 하나가 "이건 인종차별이야!" 하면서 심사대를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때? 직접 당해보니까.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했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아이의 유치원 등록을 위한 약속이 잡혀 있었다. 모든 절차가 20분 안에 다 마무리되었고, 월요일부터 등원이 가능하단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이 정말 실감이 났다. 점심 먹기 전에 충전이 잘 안 되었던 휴대폰을 수리하고, 방과 후 수업 결재를 위한 새 계좌를 개설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은행 카드를 발급받았다. 독일에서 관공서와 아주 일상적인 미팅을 잡기 위해 무려 16개월을 기다린 경험이 있던 나는 드디어 숨을 쉴 것 같았다. 바로 이거야. 이게 내 몸이 원하는 삶의 리듬이란 말이지. 감탄을 늘어놓는 나에게 엄마는 이상한 곳에 살면서 고생이 많다고 했다.
우리 독일 아저씨와 아들은 익숙한 동선으로 집 앞 편의점에서 1+1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들어왔다. 미세먼지 덕택에 잘 보이지 않는 롯데타워를 벤치에 앉아 감상하며, 당근에서 아이가 탈 두 발 자전거를 검색했다. 드디어 집이다. 모든 게 너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