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우리는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이별에 이유도 못 붙이고 정면으로 파도를 맞아버렸어요

by 시루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저는 선배가 좋아요. 선배가 사교성도 좋고 친화력도 좋아서 인기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때로는 이기적으로 굴 때도 있고, 본인의 원칙을 과하게 강요하기도 하고, 사실은 친화력 밑에 내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지질한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것도, 그 모습을 허둥대며 후회하고 웃는 모습으로 무마해 보려는 것도요.



“그래서 왜 헤어졌는데?”



그래서요. K가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서, 사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라서, 더 사실은 스스로를 잘 몰라서라는 걸 제가 알아봐서요. 저는 사랑하면 아주 면밀히 관찰해요.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칭찬을 하면 좋아한다기보다 살짝 물러나는구나, 쑥스러워하는 건 아닌 것 같고 타인의 칭찬을 믿지 않는 편인 건가?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의 아주 미묘한 것들을 알아내죠.



그거 아세요,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거울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렇다면 그 반대는요? 도박장에 거울이 없는 이유는, 도박장 주인이 현실을 숨겨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걸까요, 혹은 사람들 스스로가 도박에 빠진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서 치워버린 걸까요.



친구의 말이 맞아요. 마음은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아니 스스로가 정말 상처에 괜찮다고 생각해도, 분명 마음 안에는 괜찮지 않은 내가 있어요. 누군가가 요구(Request)를 할 때 사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그 요구가 아닌 욕구 (Desire)인 것처럼, 우리를 움직이는 건 늘 우리 안의 “무의식인 나“죠. 저는 그 사람의 가장 안쪽에 숨겨진 그를 봐요. 그리고 그건… 거울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잔인한 일이 되더라고요. 저를 통해서 그들은 자신의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모습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까.



거울을 보기 싫어하는 건 죄가 아니에요. 우리 둘은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참 별로예요,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이별에 이유도 못 붙이고 정면으로 그 파도를 맞아버렸어요. 지금은 어디 외딴섬에 표류한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잘 살아남았죠. 살아남으면 또 나아갈 수 있어요. 저는 노를 계속 저을 테니까요. 흙더미에 구른 스스로라도 기꺼이 거울을 보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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