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침 7시 회의실이었다.
요즘은 자격증 시험이 있어, 일찍 출근해 회의실에서 공부하다 사무실로 돌아간다. 평소 이 시간의 회의실은 아무도 없다. 가끔 어학수업을 듣는 사람들만 돌아다닐 뿐. 고요한 마음으로 채권이 어떻고 유형자산이 어떻고 정리하던 중,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옆 회의실이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중국어 수업을 하고 있거나, 중국 클라이언트와 c.c를 하고 있거나. ‘아침부터 열심이시네’라고 생각하며 다시 집중하려던 순간, 옆방의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약한 방음벽을 넘어 정확한 문장이 귀에 들어왔다.
“나는 최선을 다했잖아,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윽고 날카롭고 빠른 문장에 대답하는 조금은 늘어지는 남자의 목소리. 부부싸움인지 커플싸움인지, 아니 애초에 저들이 그런 형식적인 관계가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깊은 관계의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는 분명했다. 한번 높아진 여자의 목소리는 다시 내려가지 않았다. 목소리라도 크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전달받지 못할까 봐, 이곳이 회의실이라는 것을 잊은 듯이. 그럼에도 남자는 여전히 이성적으로 대응한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덜 감정적’이라는 장점 외에는 알맹이 하나 없는 문장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드는 그 말을 결국 뱉는다.
”나 더 이상 너랑 할 얘기 없어.“ 그리고 남자의 떠나는 소리.
아 저건 좀 안 좋은데. 그러나 남자가 떠났으니 이제 여자도 회의실을 나갈 테고,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들리는 여자의 처절한 울음소리. 상처받은 여자의 울음이었다. 예쁘지도 않은, 꺼억꺼억 우는 소리.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은 처량하고 구슬프게 울지만, 진짜 울음은 저런 것이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랑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 사랑에게서 나를 전혀 이해받지 못할 때, 내가 늘 저렇게 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늘 울음 자체보다는, 울음을 멈췄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 그 선택이 늘 사람의 운명을 바꿔왔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나쁜 옵션을 골랐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장 돌아오라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네가 나를 기분 나쁘게 했잖아, 그래서 내가 감정적으로 군 건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리고 다시 울음.
노트를 덮었다. 저 소리를 듣고 있자니 더 이상 공부는 불가능하겠다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회의실을 조용히 나왔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울음을 멈추고 달라진 눈빛으로 회의실을 나갈 수도 있는 여자나,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다시 대화를 하기 위해 돌아올 수도 있는 남자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다행히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참 이기적이다. 아니 이기적인 사랑을 과연 ‘사랑’으로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사랑받아야 한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여자가 받고 싶은 사랑은 ‘이해받음(Understood)’이었다. 남자가 받고 싶은 사랑은 ‘포용받음(Accepted)’ 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한 여자는 날 선 감정을 무기로 공격했고, 포용받지 못한 남자는 그 자리를 회피함으로써 대응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여자는 포용할 생각이 없었고, 남자는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 감히 묻고 싶어 지는 것이다. 이런 이기적인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연 중요한 것이냐고.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