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계곡, 숨겨진 무덤과 드러난 시간들
메디나트 하부를 나와 왕가의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한때 신들을 위한 장제전 앞에서 강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 있었던 나는, 이제 다시 흙먼지 이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 승합차의 창밖으로 풍경이 느리게 흘러간다. 나는 그 창에 얼굴을 기댄 채, 아무 말 없이 밖을 본다. 이곳은 룩소르 서안. 나일강이 준 선물 같은 땅, 생명이 기적처럼 피어나는 곳이다.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은 마치 이곳이 사막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야자수가 길게 늘어선 농로 위, 한 남자가 당나귀 마차를 몰고 지나간다. 손에는 풀을 묶은 짚단이 들려 있다. 그 뒤로 보이는 물길 하나. 아마도 강에서 끌어온 물을 흘려보내는 운하겠지. 온통 햇살이 반사된 수면 위로 하얀 왜가리 한 마리가 살짝 날아오른다.
모든 것이 살아 있다. 풀과 곡식, 동물, 사람,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이 공기마저도.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마을이 나오고, 아이들이 놀며, 어른들은 옆집에 안부를 묻는다. 땅은 사람의 시간을 기억하고, 사람은 그 땅을 밟으며 살아간다. 모든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화롭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이토록 생명력이 가득한 땅 끝자락에, 왕들의 무덤이 숨어 있다. 죽음을 향한 길이 삶의 가장 기름진 곳에서 시작된다. 저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은 어느새 풍경의 배경이 아니라 목적지가 된다. 밀밭 너머로 고요히 누운 그 산자락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부른다. 그곳 너머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이집트인들은 왜 이토록 생명의 땅 곁에 죽음의 도시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공간의 배치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같은 결 안에 놓으려는 어떤 깊은 사유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삶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다시 이어지는 곳. 매일 곡식을 베고, 물을 끌어오고, 짐승을 돌보는 이 땅 바로 옆에, 죽은 자들이 잠들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이 생명의 풍경 속에 묻혀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황톳빛 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초록의 언덕을 바라본다. 익숙한 색과 낯선 색이 섞인 이 풍경 속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 등을 맞댄 채,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처음엔 넓고 평평한 길이었다. 왼쪽엔 밀밭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오른편에는 간간이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이집트 농촌의 가장 평온한 단면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변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흙빛이 점점 짙어지고, 초록은 조금씩 사라졌다. 멀리서 보았던 산이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묘하게 달라진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줄어들고, 차량 안에는 어느새 정적 같은 것이 흘렀다.
길 양옆으로 붉게 마른 바위산이 다가온다. 한낮의 햇살에 반사되어 바위들은 금빛에 가까운 황토색으로 빛난다. 그 광경은 이상하게도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가끔 야자수 몇 그루가 마지막 생명처럼 버티고 서 있지만, 그조차도 바람에 크게 흔들릴 뿐이다. 땅은 이미 초록의 옷을 벗어버리고, 스스로를 황량함 속에 감췄다. 이제 이곳은 삶이 아닌, 죽음의 지형이다.
도로는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뚫고 지나간다. 돌산을 가르며 뚫린 길 위로 관광버스, 소형 밴, 택시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그 틈에서 알록달록한 작은 관광 열차가 꼬리를 물고 천천히 움직인다. 차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없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늘을 찾는다. 그중 몇몇은 계곡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들뜨기보다 묵직한 침묵을 택한다.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
그리고 드디어, 왕가의 계곡 입구다. 딱히 '입구'라고 부를 만한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아치도, 인상적인 조각도 없다. 그냥 바위산 사이로 뻗은 도로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뿐이다. 안내판도 작고 눈에 띄지 않는다. 간혹 지나가며 보이는 안내 표지에 쓰여 있는 ‘Valley of the Kings’라는 문구가 이곳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게, 들키지 않게.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내리고, 주차장에서 흩어진다.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온다. 어린아이는 어깨에 물통을 메고 부모 손을 잡고 걷고, 젊은 커플은 바위의 색과 햇살이 만든 그림자를 스마트폰에 담는다. 그 와중에 누군가 나지막이 말한다.
“이런 데가 있다고? 와... 완전 다른 세상이네.”
잠시 후 또 다른 이가 묻는다.
“근데 왜 이렇게 깊은 데다 무덤을 지은 거야?”
그 곁에서 누군가 대답하듯 말한다.
“도굴꾼들 피하려고 그런 거 아니야?”
그 짧은 말들 속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경이로움, 경계심, 그리고 묘한 두려움. 마치 누군가의 의도를 알아채려는 조심스러운 시선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이곳이어야 했을까? 왜 저 광활한 사막 어딘가도 아닌, 바로 이 계곡, 이 굽이진 골짜기 안쪽이었을까?
왜 이토록 깊고 험한 곳까지, 살아 있는 자들은 무거운 관을 들고 와야만 했을까?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을 안고, 계곡 안으로 들어선다. 이 길 끝에 누가 잠들어 있는지, 그들 중 누구의 이름을 우리는 알게 될지조차 모른 채.
내려서 걸음을 옮기자, 주변의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온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것만 같은 절벽들, 땅을 찢고 내려가는 굴곡진 오솔길, 그리고 붉게 마모된 바위 표면. 말없이 병풍처럼 서 있는 산자락들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태도를 한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침묵하라”는 표지판처럼.
방문자 센터 안에는 계곡 전체를 묘사한 지도와 모형이 놓여 있다. 흰색 지형 위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검은 선들. KV1, KV2, KV62… 각각의 암호 같은 이름들이 복잡하게 얽힌 채 계곡 아래를 누비고 있다. 무덤은 단순히 땅속으로 파내려 간 구멍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도시였다. 설계된 길, 구불거리는 복도, 허공처럼 이어진 방, 그리고 그 끝에 닿을 수 없는 침묵. 고대의 장인들은 이 계곡을 하나의 건축물로 바라봤던 건 아닐까.
이 깊은 골짜기, 숨겨진 도시의 지도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이곳은 감추기 위해 만든 장소다. 시간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심지어 빛으로부터도. 파라오들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한 평화를 원했다. 자신의 몸과 이름, 그리고 신과의 만남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장소를 택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은폐의 완벽함은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20세기 초,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했을 때, 이 계곡은 다시 세상의 빛 속으로 떠올랐다. 가장 깊은 곳이 가장 먼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은 은폐되었지만, 인간의 호기심은 더 깊은 곳을 향해 파고들었다.
나는 다시 계곡 입구로 돌아와, 조용히 위를 올려다본다.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햇빛은 무심히 바위를 핥는다. 사라지는 길. 그러나 그 길은 어쩌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저 멈추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묻는 사람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려는, 고대의 기술.
계곡 입구를 지나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가면, 갑자기 풍경이 바뀐다. 무겁고 웅장한 바위산의 품 안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조용할 줄 알았던 무덤의 입구는 오히려 활기차고 분주하다. 여기는 죽은 자들의 땅이지만, 산 자들의 호기심과 감탄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손에는 입장권을 꼭 쥔 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중 일부는 서둘러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또 일부는 계곡 전체를 먼저 눈에 담기 위해 언덕 쪽으로 올라간다.
바위 사이로 부는 바람은 덥고, 햇살은 뜨겁지만, 모두의 표정은 들떠 있다. 이곳은 여느 박물관이나 유적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황토색 돌산이 말없이 늘어선 골짜기 사이로 작은 길들이 복잡하게 나 있다. 마치 살아 있는 미로 같고, 누군가의 기억을 따라 만들어진 지형 같기도 하다. 이집트는 이곳을 왕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만들었지만, 지금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 관광지가 되었다.
가이드들은 한 무리씩 나누어 관광객들을 이끌고 있다. 땀이 맺힌 얼굴로 마이크를 쥐고, 되풀이되는 설명을 꾹꾹 눌러 전한다. 바람에 말이 묻히는 와중에도 그는 힘주어 외친다.
“Now, we are standing in front of the Valley of the Kings. This is not just a place… this is history itself.”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서 탄성이 터진다. 고개를 치켜든 사람들의 눈은 바위산을 넘고, 계곡의 깊은 틈을 더듬는다. 손에 든 안내 책자를 펼치며, 누가 가장 유명한 무덤인지, 어디부터 가야 하는지, 저마다 속삭이며 의견을 나눈다.
“이 무덤들... 진짜 다 파라오 거예요?”
“투탕카멘도 여기 있어?”
“근데… 그건 추가 요금이야. 못 들어간다더라.”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단연 투탕카멘과 세티 1세의 무덤이다. 그러나 이 두 무덤은 기본 입장권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따로 표를 구입해야 하고, 그 가격은 꽤 비싸다. 그래서 많은 방문객들은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는 그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무덤 앞에 서서 안을 상상하거나,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아쉬움을 삼킬 뿐이다. 거기까지 왔지만, 가장 보고 싶은 장소는 문턱만 밟고 돌아서야 하는 아이러니.
그리고 또 하나. 람세스 2세. 이집트 유적의 70%가 그의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파라오다. 룩소르, 아부심벨, 카르낙… 어디를 가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그의 무덤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입구는 닫혀 있고, 안내 표지조차 없다. 사람들은 묻는다.
“람세스 2세 무덤은 어디 있어요?”
가이드는 짧게 대답한다.
“아직은, 못 들어가요. 폐쇄된 상태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벼운 실망이 곳곳에서 번져간다. 무덤이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치 중요한 페이지가 빠진 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고대의 가장 위대한 왕을 만나러 왔지만, 그의 흔적 앞에 멈춰야만 하는 현실.
그래도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한적한 쉼터에는 관광객 몇 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얼음이 거의 다 녹은 물병을 돌려 마시고 있다. 어떤 이는 목덜미를 닦고, 어떤 이는 조용히 계곡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계곡 자체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파라오의 위엄은 이 골짜기 전체에 녹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죽은 자들의 공간에 매혹되는 걸까? 고고학적 발견의 로망?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아니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 본연의 갈망 때문일까. 어쩌면 이 계곡을 찾는 우리는, 죽은 자들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우리 자신의 유한함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곡은 갈수록 좁아졌고, 길은 돌을 밟으며 조금씩 고도를 높였다. 숨이 찰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졌다. 어느 순간, 나는 무덤들이 줄지어 자리한 공간에 다다랐다. 각각의 입구는 바위산을 향해 깊이 파여 있었고, 작은 철문과 함께 번호가 붙어 있었다. 무덤은 저마다 닫힌 듯 보였지만, 그 입구 하나하나가 감춘 시간들은 결코 닫히지 않았다.
나는 길을 따라 더 올라가, 계곡 꼭대기에 가까운 바위턱에 잠시 멈췄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계곡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줄기들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무덤은 그 품 안에 조용히 누워 있다. 아스팔트 도로와 사람들의 줄이 흘러가는 그 풍경은, 마치 오래된 파피루스 위에 다시 쓰이는 현대인의 기록 같았다.
이곳은 단지 왕들의 무덤만은 아니다. 이 계곡은 집단 기억의 구조물이다. 파라오 한 명의 시간만이 아니라, 그를 떠받들었던 수천 명의 백성들, 그의 장례를 준비했던 장인들,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손길이 함께 남아 있는 곳이다. 무덤 안에 새겨진 벽화와 비문만이 아니라, 돌을 쪼갠 흔적, 계곡을 따라 조성된 길의 각도, 입구에 남은 구멍 하나까지도 모두 시간이 만든 주석이 되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이 계곡 안에 있는 여러 무덤들을 모두 들어가 보았다. 세티 1세와 투탕카멘을 포함해 여섯 개의 무덤. 그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세계였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은 이 계곡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걷고 있지만, 어쩌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 사이를 유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다음 글에서는, 그 여정의 첫걸음으로 세티 1세의 무덤을 소개하려 한다. 가장 깊고 가장 웅장했던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이야기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지금은 계곡 입구에 앉아, 조용히 그 순간을 기다린다. 강한 햇살과 바위의 침묵 속에서, 누군가 내게 조용히 묻는 듯하다.
이 계곡은 누구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들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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