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티 1세의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가는 시간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다시 계곡을 돌아본다.
아까까지 나는 저 너머, 메마른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그곳이 “왕가의 계곡”이라 불리는 까닭을 곱씹고 있었다. 계곡이라고 하기엔 물길 하나 없고, 왕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쓸쓸한 돌무더기뿐이었지만,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장엄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 무게감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의 것이 아닌 어떤 시간의 무게가 이 땅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계곡의 한가운데, 세티 1세의 무덤 앞에 서 있다. 이제는 바깥의 빛을 등지고, 안쪽의 어둠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니, '걸어간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그저 계단을 내려갈 뿐인데, 마음속에선 ‘도달한다’는 감각이 훨씬 더 맞는다.
“여기 맞나요?”
동행자가 묻는다. 나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덤이 이렇게 조용히, 아무 설명도 없이 존재해도 되는 걸까?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니, 입구는 마치 숨기듯 만들어져 있다.
커다란 문도, 기념비도 없다. 딱딱한 석회암 벽이 계곡의 색깔과 맞닿아 있어, 무덤이라는 사실조차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 사이의 속삭임, 그리고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는 그 찰나의 침묵이 이곳이 ‘다른 곳’ 임을 말해준다.
“세티 1세의 무덤입니다. 왕가의 계곡에서도 가장 깊고 길죠.”
가이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떤 중력이 발끝을 끌어당기듯,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볍게 발을 디뎠는데도, 마치 바위 사이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무거운 감각이 밀려온다. 왜일까. 이 짧은 오르막에서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을 느꼈다. 눈앞에 펼쳐진 건 단지 몇 개의 계단과 어두운 입구일 뿐인데, 그 앞에서 나는 묘하게 작아진다.
“저 아래는 어떤가요?”
나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바람조차도 여기에선 말을 아끼는 듯하다.
무덤 입구는 바로 어둠이었다. 조명이 있고, 사람이 있고, 벽화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시야는 그저 ‘어둡다’는 느낌으로 가득 찼다. 이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수천 년 전의 침묵, 숨겨진 이름, 감춰진 죽음,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인간의 기억들이 만들어낸 어둠이었다. 세티 1세는 이 입구를 통해 '죽음'이라는 길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준비된 길, 예언된 여정, 살아 있는 자들이 그려 넣은 ‘영원의 지도’를 따라가는 일이었다.
살아 있는 내가 그 뒤를 따라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생의 시간 속에 있고, 그는 죽음의 시간 속에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같은 계단 위에 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먼저, 훨씬 멀리, 이 길을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남긴 이야기들을 따라 다시 이 길을 걷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첫 계단에 발을 올렸다. 딱딱한 석회석 위로 내 신발의 고무 밑창이 스치면서, 아주 작지만 선명한 마찰음이 들린다. 그 소리 하나로 나는 현실에서 영원의 문턱으로 넘어간다. 한 장의 입장권을 끊고 들어선 이 길이, 어쩌면 나 자신을 마주하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티 1세의 무덤을 보기 위해 왔지만, 정작 내가 마주하게 될 건 그의 삶도, 그의 죽음도 아닌, 내 안에 있는 끝과 시작,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팔을 활짝 펼친 여신.
양쪽 벽을 감싸 안은 채, 날개는 천장을 꿰고 있었고, 그 날개는 깃털 하나하나가 다 기록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지만, 말보다 더 깊은 기도가 그 날개 속에 숨어 있었다. 잠시,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림 앞이 아니라, 존재 앞에서 멈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등을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단지 지나간다.
지나간다는 말이 오늘처럼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 여신의 끝에서 나는 마주하게 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의 사람들. 붉은 살결, 검은 머리, 한 줄로 서서 정면을 보며 걷는 사람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미 필요한 말들은 벽에 새겨진 문장들처럼 몸에 담겨 있었고, 그저 그렇게,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어딘가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말이 많고, 머뭇거리고, 어디쯤인지 계속 확인하려 드는 사람인데 이들은,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무엇을 믿는지, 무엇을 지났는지. 나는 그 틈에 껴서,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다음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사람들. 색이 빠진 것도 아니고, 애초에 색을 허락하지 않은 형상들. 그들은 검은 선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선이 이상하리만치 견고하고 깊었다. 누군가가 한 줄, 한 줄 긋고 나서 오래 바라보며 지웠다가, 다시 그은 것 같은 선들. 그 정중한 곡선과 질서는 마치 그들 자신이 법이자 길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 지나간다. 눈이 없지만, 시선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나를 뚫고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 너머의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 한 생명이 벽을 기어오른다.
뱀이다.
흐르듯, 구불거리며, 유연하게 벽을 휘감는다. 처음엔 그것이 위협처럼 보였지만, 곧 알게 된다. 이 뱀은 길이다. 어쩌면 시간이다. 자신의 몸을 통해 누군가를 통과시키는, 자기희생적 여정의 형태. 그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지팡이를 쥐고, 망설임 없이 그 등을 밟고 있었다. 뱀은 그것에 저항하지 않았고, 그저 그를 싣고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선다. 그 위를 걷는 자가 파라오라면, 이 여정은 죽은 자의 길이지만, 지금 그 길을 걷는 나에게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이제, 내 몸은 더 이상 밖에 있지 않다. 나는 무덤 안에 들어왔다. 단지 물리적으로 가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존재적으로도 들어왔다. 돌 하나에도 의미가 새겨져 있고, 어둠조차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나는 지금,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 속을 걷고 있다.
무덤 속으로 내려갈수록, 세상은 점점 고요해졌다. 천장에는 빽빽하게 별이 그려져 있었고, 벽에는 정갈하게 줄 지어 선 신들과 망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를 안내하고, 심판하며, 보호하는 자들이다. 세티 1세는 여기서 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태양신의 배를 타고 뱀을 제압하며, 하늘을 건넌다. 이 무덤은 그의 초상화이자 지도이며, 동시에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나는 묻는다. 그는 무엇을 남기고자 했을까?
기둥 뒤로 몸을 돌리자, 나는 세티 1세와 라 신이 마주 선 벽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자세에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태양의 신이 그를 바라보며 말하는 듯했다.
“너는 생의 시간을 다 채웠는가?”
“그렇습니다, 신이시여. 나는 이집트의 강을 지켰고, 바다를 건넜으며, 질서를 세웠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돌보았고, 신전을 수리하였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존귀히 여겼습니다.”
“그러면 이제 죽음의 시간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세티 1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이 길을 걷습니다. 당신의 배에 올라타 밤의 세계를 지나 아침의 문에 다다르고자 합니다. 나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를, 나의 행적이 잊히지 않기를.”
그러자 라 신이 오른손을 들어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숨결은 향처럼 흩날리며 공중으로 퍼졌다. 그리고 라는 다시 말했다.
“네가 남긴 이름은 돌 위에, 별 아래에 기록되었다. 네가 걸어갈 이 밤의 항해는 하나의 심판이요, 동시에 하나의 탄생이다. 빛이 없는 시간 속에서도 너는 나를 기억하라. 나의 빛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 장면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단지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천천히 흐르는 연극 같았다. 무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방은 오히려 생명의 재생을 위한 무대였다. 그의 얼굴에는 죽은 자의 안식보다, 떠나는 자의 결의가 더 뚜렷이 남아 있었다.
그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처럼 거기 서 있었다. 세티 1세는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살짝 들어 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선 이는 라 신, 태양의 존재였다. 두 인물 사이엔 말이 없었지만, 벽화는 그 침묵 안에서 대화를 들려주고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태양신이 묻는다.
세티 1세는 천천히 대답한다.
“나는 라의 아들, 대지의 질서를 지킨 자, 하늘의 뜻을 지상에 잇는 자. 내 이름은 세티이며, 나는 생을 다 채우고 이제 빛의 궁정 앞에 섰습니다.”
“너의 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가?”
세티는 손짓으로 자신의 뒤를 가리킨다. 기둥마다 그가 살아온 시간이 새겨져 있었다. 신에게 예물을 바치며 무릎 꿇는 대신, 그는 그 삶 전체를 벽에 새긴 것이다.라는 잠시 침묵하다, 두 신녀를 부른다. 그들은 다가와한 손에 둥근 떡을, 다른 손엔 향을 들고 세티의 입에 바친다.
“이것은 생명이다. 너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세티 1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신들 앞에서 자기를 감추지 않았고, 그 삶의 총합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것이 바로 무덤 벽에 기록된 '진실'이었다.
그리고 또 한 장면. 그는 한 노인과 마주하고 있다. 노인은 그의 입가에 손을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하다. 그것은 경고 같기도 하고, 축복 같기도 했다. 벽화 속 두 인물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시간 전체가 담겨 있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노인은 제사장이었을까, 신의 대리자였을까? 아니면 미래를 예언하는 자였을까? 무엇이든, 세티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옆 기둥에는 나란히 선 이들이 새겨져 있다. 어깨를 펴고 정면을 바라보는 망자들. 그들은 각자의 상형문자와 함께 서 있었고,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자의 눈에는 그들이 말이 없는 듯 보였지만, 세티 1세는 그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우리는 길이었다.”
“우리는 기억이었다.”
“우리는 당신 앞서 걸었던 이들이었다.”
세티 1세는 그 망자들 사이를 지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당신들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남긴 이 길도, 훗날 누군가의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한 사제가 거대한 원형의 물체 앞에서 양손을 들어 의식을 집전하고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세티는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장면은 의례적이지만, 동시에 절정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닦고, 비우고, 통과하는 의식. 단순한 의례라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갱신하는 예전(禮典) 같았다.
그는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그 자세, 그 시선, 그리고 그의 주변에 펼쳐진 의식의 장면들 전체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떠나는 자가 아니다. 나는 돌아오는 자다. 밤의 물결을 지나, 다시 태양의 궤도에 오르려는 자다.”
그리고 그 순간, 무덤의 천장에 빛나는 별들이 모두 그의 이름을 반사하는 듯 보였다. 세티 1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 무덤 안에서, 돌 위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지금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 속에서.
“그는 약속된 일들을 이루었고, 신들을 공경하며, 망자들을 돌보았으며,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지 않았노라.”
그때 세티 1세가 입을 연다.
“내가 지은 죄는 적지 않으나, 그 죄를 숨긴 적은 없습니다. 나의 허물은 나의 것이며, 나의 행위 또한 나의 것입니다. 나는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을 구합니다.”
오시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덤 속 이 장면은 어느 재판보다도 더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오히려 나를 압도했다. 이 재판은 사후의 것이지만, 동시에 생의 거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재판이 나를 향한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맞이한 신은 하토르였다. 그녀는 손에 시스트럼을 들고 있었고, 표정에는 따뜻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세티 1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들을 지키려 했고, 나의 신들을 잊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이 무덤의 벽 하나하나는 내가 당신들을 기억한 증거입니다. 나의 아들 또한 이 길을 따라올 것입니다. 그는 나보다 더 강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이름을, 나의 사랑을 지워 말아주소서.”
하토르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는 순간, 천장은 별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니라, 별들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
이 모든 대화는 벽에 새겨져 있다. 나는 읽는다기보다는, 듣는 느낌으로 그 앞에 선다. 세티 1세는 무덤 속에서도 말하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영생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후대의 왕들을 위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사람들을 위해, 이 여정을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길을 걷는 나도 그의 말의 일부가 되어간다.
그는 무엇을 남기고자 했을까?
아마도, 잊히지 않기를. 죽은 자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 곧 두 번째 죽음이라는 걸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별들로 천장을 수놓고, 신들과 대화를 남기고, 자신의 그림자를 벽에 붙여둔 것이다. 이 무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존재의 흔적’을 향한 강렬한 애정이었다.
나는 다시,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 별들 사이를 걷는 일은 그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었다.
세티 1세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아홉 번째 파라오였다. 그의 치세는 비교적 짧았지만, 그는 이집트의 경계를 확장했고, 아버지 람세스 1세의 짧은 통치를 계승하여 안정된 왕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길이 남게 한 건 '기록'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을 단지 죽음을 위한 안식처로 만들지 않았다. 벽화 하나하나에 하늘의 순환, 태양의 여정, 신과 인간의 만남을 새겨 넣었다. 이 무덤은 죽음을 준비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사후의 삶을 설계하고 확신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내가 올려다본 천장에는 하늘이 있었다. 실제 밤하늘보다도 더 많은 별이 그려져 있었다. 별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티 1세가 걷고자 했던 길, 죽은 자가 통과해야 할 영원의 궤도였다. 한 기둥을 돌자, 두 신이 세티 1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는 신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서 있었고, 그 앞에 놓인 향과 음식, 상형문자들은 모두가 그의 존재를 환대하고 있었다. 죽은 자에게 이토록 정중한 예를 갖추는 풍경 앞에서, 나는 살아 있는 자로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또 한 장면, 그는 신의 배 위에 서 있었다. 뱀은 고개를 치켜든 채 물 위를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는 그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망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두 눈을 앞을 향해 두고, 고요한 발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이 장면은 일종의 믿음이었다. 어둠 너머에 길이 있으며, 그 길은 두려움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여정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길은 누구나가 아니라, 준비된 자만이 걸을 수 있는 여정이라는 선언.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티 1세는 이 벽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그는 "나는 살아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육신은 무너졌지만, 내 이름과 이야기와 영혼은 이 벽에 새겨졌다. 당신이 나를 부를 때마다, 이 글을 읽고 이 그림을 해석할 때마다, 나는 다시 살아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덤은 죽음의 방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말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말들 사이를 걷고 있다.
무덤의 중심부에 이르자, 나는 어느 방 앞에서 발을 멈추게 되었다. 별빛이 깔린 천장이었다. 천장 가득 새겨진 별은 밤하늘이라기보단, 시간을 표시하는 지도 같았다. 나는 다시 묻는다.
“왜 별을 천장에 심었을까?”
누군가 속삭이듯 답한다.
“밤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죽은 자는 태양을 따라 밤을 항해한다. 세티 1세는 그 항해를 위하여 별을 기억하고, 길을 그렸다. 그가 이 무덤을 설계하며 마음속에 품었던 것은 어쩌면 단 하나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밤을 지나 다시 떠오를 것이다.”
나는 벽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그의 배가 그려져 있다. 수많은 이들이 탄 채, 강물도 없이 어둠 위를 지나고 있다. 그 배는 단순한 선박이 아니라, 기억의 용기다. 배 위에는 거대한 검은 색깔의 딱정벌레가 앉아 있고, 그 옆에서 세티 1세가 두 손을 들고 있다.
“그것은 케페리다. 새벽을 떠올리는 신이지.”
“그러면 지금은 밤입니까?”
“지금은, 새벽을 준비하는 시간이지.”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는 믿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뱀을 그렸다. 벽을 따라 흐르듯 이어진 뱀은 셋이었고, 한 몸에 시간을 감아올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멈춰서 그 뱀을 바라본다. 처음엔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오래 보니 이상하게도 다정했다. 뱀은 되감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다. 죽음 이후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자신의 무덤에 시간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의 배가 도착한 곳은 하늘이 아니라, ‘문’이었다. 벽에는 사각형 문이 반복해서 그려져 있었다. 어떤 문은 열려 있고, 어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자들은 이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얼굴은 고요하고, 어떤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다. 나는 묻는다.
“이 모든 문을 통과해야 하나요?”
“그렇지.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질문들마다 하나씩 문이 있거든.”
그의 배가 도착한 곳은 하늘이 아니라, ‘문’이었다. 벽에는 사각형 문이 반복해서 그려져 있었다. 어떤 문은 열려 있고, 어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자들은 이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얼굴은 고요하고, 어떤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다. 나는 묻는다.
“이 모든 문을 통과해야 하나요?”
“그렇지.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질문들마다 하나씩 문이 있거든.”
나는 천천히 벽에 새겨진 문들을 바라본다. 사진 속 장면이 눈앞에 겹쳐진다. 문은 단지 경계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 앞에는 신들이 앉아 있었고, 어떤 신은 무릎을 굽히고 우리를 바라보았으며, 또 다른 신은 마치 시험하듯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긴 지팡이를 손에 쥐고, 다른 문들을 가리키는 손짓도 보인다. 문지기 같은 존재들이다. 문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했다.
특히 어떤 장면에서는 한 신이 문 안쪽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 문에는 무언가를 통과해야만 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호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문마다 쌓인 질문들. 사는 동안 넘어온 수많은 경계들. 그 모든 것이 사후의 문으로 다시 나타난다.
사진 오른편의 벽에서는 여신들이 정좌하고 있다. 그들은 책을 펴놓은 사서 같기도 하고, 재판장의 판사 같기도 하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각각의 표정과 손짓은 미묘하게 다르다. 어떤 여신은 두 손을 모아 경청하고 있고, 어떤 이는 한 손을 들어 말을 멈추는 듯하다. 문지기들인 동시에 증인이기도 하다. 이 여정은 고독하지만, 결코 방치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계속 보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
그 아래쪽에는 다시 길게 이어진 상형문자들과 그림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들은 이미 문을 통과한 자 들이거나, 그 문들 너머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세티 1세를 본다. 어쩌면 그는 그 줄의 앞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줄에 있지 않고, 그 줄을 만든 자일지도 모른다.
세티 1세는 하나하나의 문을 지나며, 그가 지녔던 질문들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는 왕이었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기도 했다. 그 역시도 물었을 것이다.
“나는 잘 살았는가?”
“나의 아들은 나를 기억할까?”
“신들은 나의 기도를 들었을까?”
그리고 그 문들 사이, 나는 섬뜩하리만치 생생한 하나의 장면 앞에 멈춰 섰다. 뱀 앞에 무릎을 꿇은 포로들. 어떤 이는 목이 잘린 채, 여전히 무릎을 꿇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피는 없었지만, 그것이 더욱 냉정하게 느껴졌다. 사형의 의식이라기보다, 무질서에 대한 응징, 질서 회복의 선언처럼 보였다.
뱀은 단지 위험의 상징이 아니었다. 이 벽화 속 뱀은 수호자이며, 판결자였다.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자들, 세상의 법을 어기고 마아트(진리와 질서)의 길을 벗어난 자들. 그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세티 1세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 장면을 마주하며 나는 깨달았다. 세티는 단지 자기 구원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무덤을 통해 ‘질서’라는 개념을 남기고자 했다. 파라오의 무게란, 단지 전쟁과 건축의 위대함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고, 신들의 법을 지키는 자로서의 책무였던 것이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질서를 어기면, 대가는 반드시 있다.”
“나는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나의 이름이 남겨지기를 바란 것은, 내가 그것을 지켰기 때문이다.”
무릎 꿇은 자들과 정좌한 신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그 시선은 지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 무덤은 그저 찬란한 무덤이 아니었다. 생의 무게, 통치의 고뇌,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두려움까지 함께 새겨 넣은, 한 사람의 깊은 내면 기록이었다.
지금 이 길 위에서 나 역시 세티 1세의 후손처럼 느껴진다. 그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이 여정을 마음속에 새기겠다고, 그렇게 조용히 다짐해 본다.
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마지막 방. 천천히 시선을 벽에 두자,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문들. 수없이 반복되는 사각형의 문들이 벽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그 앞에 앉은 여신들은 정좌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사진 속 장면에서처럼, 그 여신들은 하나같이 옆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아직 도착하지 않은 존재를 기다리는 자들처럼. 그들은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무엇을 지나왔는가?”
“무엇을 품고 있는가?”
그 문들 아래에는 뱀이 있지 않았다. 대신,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왔다는 듯한 여신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각각 하나의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고요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그 자세 하나만으로도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그 앞을 지나는 이는 누구든 멈추어야만 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들었고, 또 누군가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지나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 안에 있는 무엇과 조용히 마주하는 순간처럼 보였다.
삶에서 지나쳐온 수많은 문들. 그 문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던 말들.
“이 문을 열 자격이 있는가?”
“나는 정직했는가?”
“이 문을 넘은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세티 1세는 이 정적인 여신들 사이를 지나며, 자신의 침묵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오직 정직한 자세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세티 1세는 이 문들을 지나며, 삶의 무게를 벽에 새겨두었다. 그는 말없이 물었고, 신들은 말없이 대답했다.
나는 벽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여신들 사이에서, 그들의 손이 허공에 그린 곡선들을 본다. 그들은 침묵했지만, 그 곡선은 마치 한 문장의 결말처럼 느껴졌다.
“끝은 없다. 질문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아래, 다시 나열된 상형문자들. 그 상형문자 하나하나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이야기 같았다.
"당신은 얼마나 진실했는가?"
"당신은 누구의 눈길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다시 한 걸음 걸었다. 걸음마다 내 안에 남은 질문이 하나씩 선명해졌다. 답을 찾는 길이 아니라, 질문을 인정하는 길, 그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용기.
그는 왕이었고, 나는 이방인이다. 그는 신들의 법을 따랐고, 나는 그저 삶의 조각들을 더듬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무덤 안에서, 우리 둘은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세티 1세는 묻고 있었고, 나도 그 물음에 귀를 기울였다. 벽은 말을 멈췄지만, 나는 끝내 그것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림도, 색도, 이름도 언젠간 바래지겠지만, 질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마지막 벽을 바라본다. 천천히 어두운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이듯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잘 다녀갑니다, 파라오. 당신의 질문, 잘 받았습니다.”
나는 무덤의 가장 깊은 방에 들어섰다. 앞선 복도와 벽들이 ‘심판’과 ‘질서’를 이야기했다면, 이곳은 훨씬 더 부드럽고 근원적인 장면으로 나를 맞이했다. 벽화 속 신들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문을 지키지도 않았다. 대신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태양의 배가 조용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파라오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이제야 본질에 닿은 듯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다시 별들이 보였다. 이 방은 다시 하늘 아래 놓인 땅 같았다. 신들의 배는 별과 물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밀어냈고, 그 배 위에서 세티 1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자신조차 통과한 한 인간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순간, 벽 한쪽에 또렷이 새겨진 세 마리의 뱀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머리를 치켜들고 서로를 감시하듯 버티고 있었고, 육중한 몸체는 마치 바닥의 물결을 부여잡은 듯 굽이치고 있었다. 이 뱀들은 세티 1세의 항해에 등장하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지기이자 시간의 감시자였다. 그 곁에는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가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자세는 숭고한 순종이 아니라, 깊은 숙고의 순간처럼 보였다. 죽음을 인도하는 신이, 마치 사후의 길목에서 길을 묻는 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 무릎을 꿇고 있지만 시선은 똑바로 벽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인간의 길을 안내하던 신도, 그 길 앞에서는 스스로 무릎을 굽히고 있다는 사실이 이 방 전체에 깊은 고요를 불러왔다.
세티 1세는 그 벽화들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태양의 아들이 아니라, 밤을 건너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 길을 알고 있었기에, 길 위에 남은 자들을 위해 신을 앉혀 두었습니다.”
나는 그 뱀들과 아누비스 사이를 지나는 기분으로,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벽에 도달했다. 하토르의 소가 그려진 벽. 나는 숨을 들이쉬며 그 장면 앞에서 멈춰 섰다. 거대한 황소의 몸 아래에 작은 사람들이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하토르 신의 젖가슴에 입을 대고 있었다. 두 손을 모은 사람, 등을 숙인 사람, 고개를 든 사람, 각자의 자세로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모성적이고, 동시에 존재론적으로 압도적이었다.
'하토르(Hathor)'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되고 사랑받은 여신 중 하나다. 사랑과 음악의 여신, 기쁨과 미의 여신으로 알려졌지만, 동시에 죽은 자를 저 너머로 인도하는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녀는 말없이 그들을 품었고, 자신의 젖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나누어 주었다. 이 장면에서 하토르는 심판자가 아니라, 끝없는 자비의 근원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젖을 먹는 이들은 누구일까. 단지 죽은 자들일까? 아니면, 이 삶에서 길을 잃고 무너진 모든 이들, 자신을 구할 수 없는 모든 인간들일까? 나는 그 아래 선 자들이 꼭 나처럼 느껴졌다. 심판을 지나왔고, 문들을 통과했고, 무릎을 꿇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신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사람들.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받아 마셨다.”
세티 1세는 이 장면을 왜 남겼을까? 그토록 정밀하고 경건하게 무덤을 설계한 파라오가, 마지막에는 하토르의 젖을 받아먹는 사람들을 그린 이유. 아마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제국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이름도 끝까지 기억되지 않으며, 마지막을 지나는 이에게 필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자비를 받아들이는 겸손이라는 걸.
나는 한참을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이집트의 신들 중 어떤 존재도 이토록 부드럽고 침묵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품는 장면은 없었다. 하토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거기 있었다. 수천 년 전 이 무덤을 빠져나가며 세티 1세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던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나도 조용히 한 무릎을 꿇었다.
“나도, 여정의 끝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누구였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가 남겨지기를.”
그리고 나는 일어섰다. 이제 다시, 바깥으로 나아갈 시간이었다. 태양은 여전히 무덤 바깥에서 빛나고 있었고, 나는 이제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무덤을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세티 1세의 무덤은 더 이상 그 거대한 복도나 그림들로만 남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걷고, 머무르고, 속삭이며 지나온 길이었다. 단지 한 왕의 사후 공간이 아니라, 한 인간이 남긴 질문과 기억의 고요한 무대.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웠고, 어떤 말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메아리치고 있다.
바깥의 햇살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강하게 쏟아졌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아니라, 침묵에 길들여진 마음이 빛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따뜻했지만 낯설었고, 내 발 밑의 돌은 어딘지 모르게 부서지기 쉬운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한번 계곡을 바라본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는 곳. 그들의 이름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질문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또 하나의 무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소년왕의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문.
그 문은 세티 1세의 무덤보다 훨씬 작고, 훨씬 어둡고, 훨씬 덜 준비된 듯 보이겠지만, 그 안에는 ‘발견’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세티 1세가 별로 돌아간 존재였다면,
그는 황금으로 기억된 존재였다.
나는 이제 다시 숨을 고르고,
그 문턱에 발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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