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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 잊혀진 소년을 찾아서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만난 생과 죽음, 그리고 영원의 숨결

by 나그네 한

파라오, 잊힌 소년의 이름



세티 1세의 무덤을 나와 다시 계곡길에 들어섰다. 메마른 골짜기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건조하고, 하늘은 눈부시게 빛났다. 끝없이 이어지는 누런 절벽과 바위산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했다. 찬란한 이름들을 품었던 이 계곡은 이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만이 절벽을 스치며, 한때 이곳에 생과 죽음이 교차했다는 사실을 가만히 속삭일 뿐이다. 나는 그 바람 속을 천천히 걸었다.


이윽고, 바위틈 사이에 소박하게 세워진 한 나무판이 눈에 들어왔다.



"TOMB OF TUTANKHAMUN No:62"


검은 글씨로 새겨진 단순한 표지판. 그 옆에는 아랍어로 같은 문구가 덧붙여 있었다. 간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소박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문득, 이 작은 나무판이 한 시대의 비밀을 품은 마지막 열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왕가의 계곡 깊숙이, 다른 파라오들의 웅장한 무덤들 틈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자리.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잊힌 소년 왕, 투탕카문의 무덤.


투탕카문.

그는 한때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9살 무렵 왕위에 올랐고, 불과 열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사의 무대에서 너무 일찍 사라진 소년은, 화려한 업적도, 찬란한 정복도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는 혼란과 전환의 시기에 살았다.


투탕카문이 살아갔던 시대는 아마르나 종교개혁의 여파 속에 있었다. 그의 전임자, 아크나톤은 모든 전통 신들을 부정하고 아톤 신 하나만을 숭배하는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신전은 문을 닫고, 사제들은 몰락했다. 천 년 넘게 이어진 관습이 하루아침에 뒤흔들렸다. 백성들은 혼란에 빠졌고, 이집트의 뿌리 깊은 질서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어린 투탕카문은 왕좌에 앉았다.

그는 급히 무너져가던 세계를 수습해야 했다. '투탕카아톤'이라는 이름(‘아톤의 살아 있는 형상’)을 버리고, '투탕카문'(‘아문 신의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는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었다. 그는 아크나톤의 종교개혁을 철회하고, 다시 아문 신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질서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상징했다. 그러나 너무나 어린 나이였기에, 이 모든 결정은 그 자신이 아닌 주변 권력자들에 의해 이끌렸을 것이다.


짧은 생애 동안, 투탕카문은 스스로의 의지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무덤을 마주하며 나는 그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여느 파라오들의 무덤에 비하면, 그의 무덤은 놀랍도록 작고 소박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숨을 죽일 만큼 낮은 천장과 좁은 복도가 이어진다. 웅장한 회랑이나 화려한 벽화로 가득 찬 다른 무덤들과 달리, 투탕카문의 무덤은 오히려 숨겨진 듯, 서둘러 지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아직 장례를 준비할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 다른 귀족을 위해 준비되던 작은 무덤을 황급히 개조해 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에게는 대대로 내려오는 위대한 피라미드도, 웅장한 사원도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조그만 공간이, 소년 왕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아이러니했다.

크고 화려한 무덤일수록 도굴의 표적이 되기 쉬웠고, 많은 파라오들의 무덤은 세월 속에서 약탈되고 사라졌다. 반면 작고 외진 투탕카문의 무덤은 오히려 수천 년 동안 모래와 돌더미 속에 감춰져 있었다. 세상이 그의 존재를 잊는 동안, 무덤은 조용히 비밀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곳을 발굴할 때까지 말이다. 수년간 왕가의 계곡을 탐사했지만, 기대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모든 무덤은 발견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카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찾지 못한 '어딘가'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조심스럽게 모래를 걷어낸 끝에, 계단의 일부를 드러냈다. 곧이어 '투탕카문의 인장'이 찍힌 봉인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고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카터가 최초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는 단지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당시 카터는, 후에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된 황금 관을 처음 발견했지만, 사진 촬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황금의 눈부신 광경이 보인다."


그 작은 무덤 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부장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황금 관, 왕좌, 수레, 의복, 무기, 악기들... 온갖 삶의 흔적들이 다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투탕카문이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여전히 파라오로서 존엄하게 대접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나는 다시 작은 나무판을 바라본다. 거대한 무덤군 속에서 한없이 소박하게 서 있는 이 표지판. 그러나 이곳이야말로, 세상을 다시 깜짝 놀라게 했던 소년 왕의 비밀을 품은 문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위대한 인물만을 기억한다. 눈부신 업적을 남긴 이들만을 추앙한다. 그러나 때로는 가장 잊힌 자가, 가장 큰 비밀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투탕카문.

그의 이름은 죽음 이후 수천 년 동안 잊혔다가, 마침내 다시 세상의 입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그 긴 침묵 속에서, 오히려 가장 순수한 형태로 영원해진 것이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 작은 문을 지나 무덤 안으로 들어섰다. 소년 파라오가 마지막으로 바라보았을 어둠 속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사후의 문을 지나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은 투탕카문의 무덤은 생각보다 좁고 낮았다. 허리를 약간 굽히지 않으면 지나가기 어려운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벽에는 수천 년 전의 손길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벽에 다가서자, 마치 누군가가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나를 맞이한 것은,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젊은 파라오의 모습이었다. 그는 온화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오시리스, 죽은 자들의 신이 서 있었다. 하얀 관을 쓰고, 두 팔을 가슴 위로 교차한 채, 왕을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벽화 앞에서 잠시 발을 멈췄다. 속삭이듯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두려웠나요?”


당연히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공기가 흔들렸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소년 왕, 열아홉 살에 죽음을 맞이한 이 소년은,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어린 왕이라도 홀로 서야만 했다.


벽화 속 투탕카문은 오시리스 앞에 선다. 그의 손에는 생명의 열쇠, 앙크(☥)가 들려 있다. 그것은 생명의 문을 넘어가는 통행권과도 같았다. 왕은 신 앞에서 다시 살아나야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복도를 따라 이동했다. 좁은 벽면을 가득 메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다음 장면에서는 투탕카문과 후계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의 곁에 선 남자 — 아야 — 그는 투탕카문이 죽은 뒤 왕위를 이어받은 인물이었다. 아야는 표범 가죽을 두른 채, 한 손으로 왕에게 부활의 의식을 집행하고 있었다. 향을 피우고, 주문을 속삭이며, 죽은 왕을 다시 신들의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나는 벽 속에서 그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잠들지 말라. 깨어나라. 너는 다시 빛을 볼 것이다.”


나는 그 주문을 따라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삶과 죽음, 어둠과 빛의 경계선에서, 투탕카문은 이렇게 다시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벽을 따라 더 걸어가자, 조금은 독특한 장면이 펼쳐졌다.


12마리의 원숭이들이 정렬해 있었다. 그들은 개코원숭이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간의 수호자, 특히 밤의 시간을 인도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나는 벽에 손끝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이 긴 밤을 너희가 함께 건너는 거니?”


원숭이들은 말이 없었지만, 그 조용한 그림자들 속에는 이상할 정도로 생기가 있었다. 그들은 태양신 라와 함께 12시간 동안 어둠의 세계를 항해했다. 밤의 바다, 혼돈의 강을 건너, 새벽의 부활을 준비했다. 투탕카문 역시 이 길을 따라가야 했다.


그는 죽은 자의 나라를 통과하고, 혼돈의 괴물들과 맞서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동틀 무렵 다시 태양과 함께 부활해야 했다.


나는 무덤 안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발소리가 벽에 부딪혀 작게 메아리쳤다. 어쩌면 이 고요함이야말로, 투탕카문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벽마다, 마치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황금색 바탕 위에 섬세하게 그려진 인물들, 기호들, 주문들은 모두 작은 나침반이었다. 왕의 영혼을 길잡이 삼아, 죽음 너머의 길을 안내하기 위해 새겨진 지도였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걸음을 옮기고, 길을 잃고, 다시 찾고, 그러다 결국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정표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길을 인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투탕카문의 무덤은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 새겨진 세계는 광대했다. 한 소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원의 이야기가 고요한 숨결로 남아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벽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돌 속에서, 따뜻한 어떤 떨림이 전해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잘 건넜군요. 정말 잘 건넜군요.”








잠든 자를 지키는 벽화들



복도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서자, 시야가 한순간에 탁 트였다. 투탕카문의 석관이 자리하고 있는 방이었다. 가느다란 빛줄기가 천장 틈 사이로 스며들어, 벽에 그려진 인물들과 석관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지금도 누군가 이 안에서 가만히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황금빛 장식이 흐릿이 남아 있는 석관은 놀랍도록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 위를 스치는 시간의 흔적은 부드럽고도 깊었다. 세월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삼켜버렸던가. 그럼에도, 여기에 남은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왕의 잠든 몸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영원에 닿으려는 손길이 여전히 벽과 석관 위에 남아 있었다. 나는 석관 가까이 다가섰다. 그 안에는, 수천 년을 건너온 투탕카문의 미라가 있었다. 지금은 유리관 속에 옮겨져, 조심스럽게 보존되고 있다.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는 숨을 쉬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여전히 선명했다. 작은 몸, 다소 왜소해 보이는 팔다리, 검게 변색된 피부. 그것들은 분명히 죽음의 증거였지만, 동시에 '살았던'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유리관 너머로 조용히 인사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잘 버텼군요."


투탕카문의 미라는 고요했다. 그러나 고요함 속에서도, 그가 이 세계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숨죽인 몸짓으로,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내 시선은 다시 천천히 벽을 향했다.



벽에는 고요한 행렬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일렬로 서서, 작은 들것을 조심스레 나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검은 머리와 붉은 얼굴, 화려한 장식으로 감싸인 투탕카문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마지막 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나는 그 행렬 앞에 조용히 섰다.

그리고 벽화 속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는 여전히 그를 지키고 있구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우리는 함께 간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그들의 단단한 침묵은 그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들것을 나누어 든 손들이 보였다. 어떤 이는 팔에 힘을 주고, 어떤 이는 머리를 숙이며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무언가를 운반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을, 그의 기억을, 그의 이야기를 나누어지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몸이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짜 죽음은, 기억하는 이가 하나도 남지 않을 때 완성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투탕카문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를 실은 들것, 그를 바라보는 눈빛, 그를 감싼 붉은색과 황금빛 장식들 속에, 그는 조용히 호흡하고 있었다. 나는 벽을 따라 걸으며 다시 속삭였다.


"당신은 죽지 않았어요. 당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서, 이 벽과 공기 속에서."


조심스레 석관을 한 바퀴 돌았다. 주위를 맴도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자리에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떤 자리에서는 고개를 숙이며. 이곳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였다.


소년 왕이 짧은 생을 살았어도, 그가 남긴 존재의 흔적은 이렇게 긴 세월을 넘어 여기에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유리관 속 소년을 바라보았다.


죽음 너머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소년.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라는 가장 긴 강을 건너,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물고 있는 소년. 밖에서는 햇살이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덤 안에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어둠이 감돌았다. 그 어둠 속에서, 왕은 꿈을 꾸듯 고요히 누워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벽화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작은 손짓들이, 작은 눈빛들이 살아 있었다. 사람들이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놓은 수많은 흔적들. 문득, 내 마음속에서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잊지 않았던 얼굴들.


오래전 멀어진 이들의 숨결.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은 다짐을 새겼다.


"당신을 더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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