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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새긴 신전

람세스 3세와 메디나트 하부, 기억의 벽 앞에서

by 나그네 한

메르넵타의 장제전에서 나는 오랜 침묵과 마주했었다. 무너진 기둥과 반쯤 묻힌 바닥돌 위로, 바람은 아무 말 없이 지나가고, 햇빛조차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그곳. 지워진 이름들, 사라진 얼굴들, 그것들이 남긴 여백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여백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누군가의 영광이었던 것이 어떻게 이토록 조용한 잔해로 남는가. 잊히는 것과 지워지는 것 사이에서, 나는 그 경계를 오래 바라보았다.


바로 나는 또 하나의 장제전 앞에 도착했다. 이번엔 침묵 대신 울림이 있었다. 메디나트 하부. 람세스 3세의 이름이 여전히 선명하게 새겨진 그 벽은, 애써 목소리를 죽이지 않았다. 그가 남기고자 했던 것은 기억이 아니라 위협에 가까웠고, 기도라기보단 선포에 가까웠다. 신전은 사라질 운명을 안고 있지만, 권력은 돌을 통해 자신을 새긴다. 그리고 이곳, 메디나트 하부의 입구에 선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신전은 침묵 속에서 이야기되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명령하듯 들려주는 곳이라는 것을.



전쟁을 기록하다 – 벽에 새겨진 사냥과 정복


이곳은 신전이자 전쟁의 극장이었다.


람세스 3세가 세운 메디나트 하부의 첫인상은 ‘경배의 장소’라기보다는, ‘전리품의 전시관’에 가까웠다. 제1주랑(pylon) 정면을 가득 메운 부조는 신의 위엄보다도 파라오의 분노와 위협을 먼저 전달한다. 그 거대한 벽에 새겨진 람세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수많은 포로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곤봉은 지금 막 내리쳐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높이 치켜들려 있고, 그 아래에는 질서 있게 무릎 꿇은 이방의 포로들이 줄지어 있다. 하나같이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인 채, 저항하지 않는 표정들. 생생한 근육의 긴장과 함께 새겨진 그들은 단지 부조가 아니라, 패배라는 감정의 박제처럼 느껴졌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벽에 새겨진 얼굴들에는 여전히 말이 없고, 그 침묵은 무겁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쟁의 함성, 포로들의 비명, 권력의 외침이 돌 속에 갇혀,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침묵하게 했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 벽을 이토록 말 많게 만들었는가. 나는 그 물음 앞에 오래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 신전은 기도를 올리는 성소라기보다는, 권력이 기억되기를 바란 거대한 선언문이었다. 신보다 인간이 더 전면에 나선, 돌의 선포였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 나는 그 부조 앞에 선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장난기 가득한 포즈를 취하며, 마치 자신이 람세스라도 된 듯, 손을 높이 들고 “포로들을 다 잡았다!”라고 외쳤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동시에 낯설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의 몸짓은 이 벽화가 상징하는 ‘권력의 언어’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흉내 내고 있었다. 천진한 흉내는 가벼웠지만, 그 배경이 된 이 벽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람세스 3세는 이 신전을 통해 자신이 신들의 대리자이며, 국경을 지킨 영웅이며, 질서의 수호자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선언은 기도로서가 아니라, 군사 보고서처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포로의 숫자, 적의 부족명, 전차의 바퀴 수까지도 기록된 이 벽은 '신전'이라기보다 ‘기억의 요새’였다.


돌에 새긴 이 문장은 죽지 않았다. 람세스 3세가 이토록 거대한 벽을 세운 이유는 단순한 장례의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 벽이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자신의 ‘위협’을 전하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 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웃으며 돌아섰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여전히 한 줄의 문장이 남았다.


"이 신전은 기도의 집이 아니라, 공포의 교과서였다."



이 신전의 벽은 말을 하지 않지만, 쉬지 않고 전쟁을 이야기한다.


메디나트 하부의 벽면을 따라 걷다 보면, 람세스 3세가 직접 전차에 올라 짐승을 사냥하거나 적국의 병사들을 추격하는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황소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사슴이 도약하는 모습, 질주하는 말, 무너지는 병사들. 모든 동작은 멈춰 있지만, 오히려 더 강하게 움직임을 암시한다. 곧 꿰뚫릴 창, 벌어지는 전투, 도망치는 발자국까지—그 긴박함이 돌 위에서 숨을 쉰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사냥의 기록이 아니다. 이집트의 적들이 누구였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원정을 나갔는지, 그리고 그 전투에서 파라오가 어떤 영광을 얻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국가 연대기’다. 리비아와 시리아, 그리고 바다 민족이라 불린 외세의 이름들이 히에로글리프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돌로 된 역사서이며, 피로 적힌 선언문이다.


그런데 이 벽화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정확하게 묘사된 짐승의 근육이었다. 생명력을 뿜어내는 듯한 동물의 형태, 도약 직전의 긴장된 순간,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왕의 당당함. 폭력과 예술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점. 돌에 새긴 이 동물들은 죽은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패배자로 새겨져 있다.



벽은 그저 승리를 자랑하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그 자체가 전쟁의 무대였다. 람세스 3세는 이 벽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적과 싸웠고, 어떤 방식으로 이겼는지를 후세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하고자 했다. '나를 기억하라'는 말 대신, '내가 누구를 무릎 꿇렸는지 보라'는 눈빛이 벽에서 쏟아진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 기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신을 향한 제사의 일환이었을까, 아니면 백성들을 위한 교훈이었을까. 혹은, 후대의 파라오들에게 던지는 침묵의 경쟁 선언이었을까.


확실한 건, 그 누구도 이 벽 앞에서 가볍게 웃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곳에 새겨진 건 단지 승리가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과 야망, 정복과 파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왕은 적을 무찌른 이야기를 신전 안이 아닌, 정문 가까운 벽에 새겼다. 들어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전쟁’을 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신보다 먼저, 왕의 무력을 보게 하기 위함.


그래서일까. 나는 이 벽이 신을 섬기는 도구라기보다는, 두려움을 관리하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말 없는 선전(宣傳)이었고, 돌에 새긴 위협이었다. 그렇게 이 신전은 기도보다 더 많은 전쟁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신전은 읽히는 신전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눈은 자연스레 벽을 따라 움직였다. 어떤 기둥에도, 어떤 벽면에도 공백은 없었다. 상형문자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엔 신들과 동물들, 꽃과 새, 풍뎅이와 소가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람세스 3세의 이름, 신들에게 바친 제사, 정복한 땅과 전리품의 목록, 날의 이름, 태양의 위치, 바람의 방향까지도.


그런데 메디나트 하부의 벽면 부조는 다른 신전들보다 훨씬 깊고 날카롭게 새겨져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마치 그림이 아니라 조각에 가까웠다. 음영이 짙게 드리워질 만큼, 돌의 표면을 깊게 파들어 간 문자와 형상들. 왜 이토록 깊게 새겼을까. 아마도 람세스 3세는 후대의 손으로부터 자신의 이름과 업적을 지켜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파라오들이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고, 이름을 삭제하며, 역사를 다시 쓰곤 했다.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쉽게 지우지 못하도록, 돌 깊숙이 이름을 새겼던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다 읽을 수 없었지만, 읽히지 않아도 압도되는 느낌은 분명했다. 이곳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지어진 장소였고, 말이 아닌 기호로, 종이 아닌 돌로, 그리고 침묵이 아닌 반복을 통해 자신을 영원에 각인시키고자 한 시도였다. 파라오의 이름은 벽마다 다시 쓰였고, 신의 이름은 기둥마다 다시 불렸다. 마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존재를 보장하는 일이라는 듯.


한 기둥 앞에 멈춰 섰다. 그 위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상형문자와, 몸의 방향은 다르되 시선을 곧게 마주하는 신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 여전히 남아 있는 푸른 채색은 이 신전이 한때 얼마나 눈부셨는지를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파란 하늘을 닮은 천장 아래, 색이 바랜 벽화는 낮은 빛 속에서도 은은히 숨을 쉬고 있었다.


기둥을 따라 새겨진 형상들은 마치 하나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수직의 기둥은 시간의 축이 되었고, 그 축을 따라 파라오와 신들이 나란히 앉거나 서 있었다. 각각의 모습은 따로였지만, 전체로는 분명히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제사를 올리는 장면, 선물을 바치는 손, 신의 시선을 올려다보는 왕. 그것은 하나의 기도문처럼 읽혔다. 입술 대신 발걸음으로 읽어야 하는 경전. 말 대신 형상으로 암송되는 역사.


나는 그 문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떤 곳에선 신의 손끝이 왕의 머리에 닿아 있었고, 또 어떤 기둥에선 파라오가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고 있었다. 권력이 신 앞에서 몸을 낮추는 장면, 또는 신이 왕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형상들. 그것은 단지 장면이 아니라, 권위의 구조를 새긴 하나의 사상처럼 보였다.


기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였고, 회랑은 그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문장 구조였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말이 없다는 그 사실이었다. 기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곁에 선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일까?


이름을 남긴 자들의 벽을, 신의 명령을 기록한 기둥을, 그리고 시간이 그 위에 새긴 침묵을.



회랑의 안쪽, 그늘이 짙은 벽면에는 또 다른 기록이 있었다. 잘린 팔, 잘린 손, 그리고 쌓여 있는 그것들을 세는 관리의 모습. 무릎 꿇은 포로들. 그들의 크기는 작았고, 표정은 무표정했으며, 수는 많았다. 람세스는 그들 위에 서 있었다. 커다란 몸집과 곧은 자세, 손에는 어김없이 곤봉이나 활이 들려 있었다. 그 벽은 이름이 아닌 숫자를 남긴 기록이었다. ‘이만큼을 정복했다’는 표식으로서의 잘린 사지들.



기억은 이름으로도 남지만, 때로는 지워진 흔적으로도 남는다. 이 벽은 그 둘을 모두 품고 있었다. 한쪽에는 파라오의 카르투시(왕의 이름을 둘러싼 타원형)가 반복되고, 다른 한쪽에는 이름조차 남지 못한 패배자들의 몸 일부가 숫자처럼 정리되어 있다. 기억의 이중성. 한쪽은 영광을 위한 기록, 다른 쪽은 그 영광이 무엇을 짓밟고 세워졌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나는 그 벽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이름이 반복될수록, 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지워진 존재들의 침묵이 더 크게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문득 파라오의 눈과 마주쳤다. 벽에 새겨진 형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은 살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움직이지 않는 손, 그러나 나는 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많은 이름을 남기려 했습니까?”


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다 보니, 그 침묵이 하나의 문장처럼 다가왔다. ‘이름을 남기지 않으면, 존재도 사라진다.’ 그는 신의 옆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두며, 영원을 꿈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요? 이름 없는 이들, 잘린 손과 팔로 숫자처럼 남은 자들은요?”


그의 눈은 말이 없었고, 나는 그 무언의 대답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람세스는 자기 이름을 신의 이름 옆에 두었고, 정복한 자들의 존재를 숫자로 바꾸어 두었다. 그렇게 이 신전은, 이름의 무게와 이름 없음의 비극을 동시에 담은 거대한 돌의 기록이었다.


어쩌면, 진짜 신은 이곳에 쓰이지 않은 이들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묻히지 않고, 불리지 않고, 그저 잊힌 채 벽 속에 앉아 있는 그들. 그들이 이 신전을 가장 오래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들과 함께 하는 왕, 그리고 신전 밖의 사람들



신들은 항상 높이 있었다. 그리고 파라오는, 그 신들의 곁에 있도록 선택된 존재였다.


메디나트 하부의 어두운 내부 회랑, 그 안쪽 깊숙한 방들에 들어서면, 벽화는 전쟁의 함성을 멈추고 의식의 고요로 전환된다. 여전히 채색이 남아 있는 벽면 위에 아문 과 무트, 콘수,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신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팔을 뻗어 축복을 내리거나, 상징물을 내밀며 파라오를 환대하고 있었다. 왕은 그 앞에서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바친다. 마치 인간과 신이 정해진 안무를 따라 움직이는 무언의 제례극처럼.


이곳에서 파라오는 더 이상 전차를 모는 전사가 아니다. 그는 제사장이자 신의 대리인이며, 인간과 하늘 사이의 매개자다. 칼이 아닌 향로를 들고, 곤봉 대신 제물의 접시를 든 채, 왕은 신과 눈을 맞춘다. 부조에 새겨진 그들의 손끝은 거의 맞닿을 듯 가까우며, 그 거리는 이집트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틈새였는지도 모른다. 하늘이 땅에 말을 거는 자리, 혹은 인간이 신에게 나직이 속삭일 수 있는 자리.


나는 그 장면 앞에서 한동안 멈춰 있었다. 빛은 거의 닿지 않았고, 그 어둠은 오히려 이 공간을 더 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부조 위의 붉은 피부색, 파란 왕관, 어깨 위에 떠 있는 태양 원반들—모두가 오랜 시간을 견디고 남은 색채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제례의 장면을 살아 숨 쉬게 했다.


이 신전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었다. 이곳은 하늘과 접촉하려는 인간의 손끝이었고, 신의 시선이 닿는 것을 믿었던 공간이었다. 파라오는 그곳의 중심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외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신과 가장 가까웠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신전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바람의 질감을 다시 느꼈다. 내부의 고요가 짙은 음률이었다면, 외부의 폐허는 거칠고 부서지는 리듬 같았다. 발아래는 흙먼지가 흩날리고, 먼 언덕 위로는 갈색의 진흙벽들이 낮게 무너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주거의 흔적이었다. 메디나트 하부라는 장엄한 신전의 바로 곁에서, 누군가는 살았고, 먹었고, 일했고, 잠을 잤다.


무너진 벽 사이로 정방형의 방 구조가 드러났고, 물웅덩이가 있었을 법한 움푹 팬 자리도 있었다. 신전에서 사용되던 도구를 닦던 수도, 파라오의 제사를 준비하던 부엌, 경비병이 교대를 기다리던 방일 수도 있다. 혹은, 제사를 앞두고 물로 몸을 씻던 젊은 사제의 숙소였을지도 모른다.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시간. 신전은 신과 왕의 이름으로 가득했지만, 그 이름을 일상 속에서 떠받친 이들은 벽에 새겨지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그 폐허를 걸었다. 부서진 돌 위로 내려앉은 새의 그림자, 무너진 벽에 기대어 쉬는 고양이 한 마리. 이름 없는 이들이 남긴 풍경은 너무도 다정하고 조용해서, 차라리 성스럽기까지 했다.


신들과 함께 있는 왕이 벽 안에 남았다면, 벽 밖엔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그들의 삶은, 부조한 줄 없이도 이곳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벽의 안과 밖, 권력과 평범함, 신의 얼굴과 사람의 뒷모습이 함께 남은 공간. 메디나트 하부는 그런 곳이었다. 거대하고 신성하며, 동시에 조용하고 인간적인 곳.


그리고 나는, 그 경계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듯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들 – 안쪽 회랑의 아름다움



신전의 가장 깊숙한 회랑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곳은 가장 고요하고 가장 정제된 공간이었다. 거대한 기둥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아직도 푸른빛이 살아 있는 천장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마치 하늘이 땅 가까이로 내려와, 조용히 사람들 위에 손을 얹고 있는 듯했다. 그 파란 천장은 실제 하늘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이 더 하늘 같다고 느꼈다. 땅과 하늘 사이에 놓인 이 회랑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경건의 극치였다.


기둥 하나하나에는 신들의 이름과 상징, 제례의 문장, 파라오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어둠과 섞이며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 그림자들은 다시 기둥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색은 사라졌지만 기운은 남아 있었고, 형태는 멈췄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숨을 멈추고 그 안을 걷고 있었다. 소리를 내는 것이 이 공간의 침묵을 해치는 일 같아서, 발끝으로만 움직였다.


한 기둥 앞에 멈춰 섰다. 그 앞면에는 파라오가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옆면에는 신이 파라오를 축복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대화 같았고, 하나의 기도 같았다. 왕과 신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인간과 신의 거리는 기둥 하나만큼 좁아졌다.


이 신전은 전쟁의 끝이 아니라, 고요한 고백이다.


파라오는 싸웠고, 정복했고, 신을 섬겼다. 그리고 이 신전은, 그 모든 역사를 돌에 새긴 채, 여전히 조용히 서 있다. 그 웅장함 속에는 권력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영원의 두려움일 수도 있고, 사라짐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나는 이 기둥들을 하나의 기도처럼 느꼈다. 소리 없는 찬송, 형태 있는 간청. 그 어떤 신전도 이토록 많은 고백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왔다.


햇살은 여전히 따뜻했고, 먼지는 바람을 따라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돌담을 지나 마을로 접어들자, 벽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라반세라이(Caravanserai)라는 이름이 적힌 수공예 상점의 벽엔, 고대 이집트를 재현한 그림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었다. 항아리를 굽는 사람, 짚을 나르는 소, 빵을 굽는 손들. 벽 위의 이 그림들은 신전의 부조처럼 웅장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더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더 걸으니, 고고학자들이 땅에 앉아 깨진 항아리를 붙이고 있었다. 사막 위에 나란히 놓인 토기 조각들,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작업 중인 사람들. 그들의 손끝에서 흙먼지 대신 이야기가 다시 연결되고 있었다. 수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누군가의 손이 만들었을 그릇을, 지금 누군가가 다시 되살리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손끝에서 맞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너머로, 초록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밀 이삭이 흔들리고, 야자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사막과 가까운 이 땅이 이렇게 푸를 수 있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오래된 인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집트 문명의 기적은 사실 웅장한 돌보다도, 이 흙과 물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물길이 보이지 않아도 물을 알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농사짓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삶은 여전히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신도, 왕도, 전쟁도 모두 지나갔지만, 사람은 여전히 흙을 일구고, 손으로 빚고, 말없이 살아간다.


나는 그 들판 가장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메디나트 하부의 벽이 말했던 것들과, 지금 이 마을의 벽이 보여주는 것들이 겹쳐 보였다. 하나는 기억을 돌에 새기려 했고, 다른 하나는 일상을 흙에 뿌리내렸다.


신전은 영원을 말했지만, 마을은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있었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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