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넵타의 석비, 정복과 기억의 경계에서
신전을 향해 걷는 길 위에, 나는 자꾸만 멈춰 섰다. 메르넵타의 장제전을 보러 가는 길이었지만, 발길은 자꾸 주변의 일상으로 기울어졌다. 짧고 낮은 담 너머로는 초록빛이 짙게 내려앉은 밭이 있었다. 파릇한 풀잎 사이로 바람이 스치면, 그물처럼 얽힌 이파리들이 살랑이며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곁에는 먼지 가득한 오토바이 한 대와 나무 자루 몇 개, 그리고 어디선가 흙냄새를 안고 나온 아이들이 소곤거리고 있었다.
담장이 끝나는 지점, 어딘가 오래된 오븐 하나가 나를 붙들었다. 굽다만 빵이 옆에 놓여 있었고, 벽돌 사이로 스며든 검은 그을음은 이 오븐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이집트의 한낮 뙤약볕 아래서도 빵은 구워지고, 밭은 가꾸어지고, 나일강은 조용히 생명을 토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는 장을 막 보고 돌아온 사람들이 짐을 내려놓고 있었다. 서로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나눠 올리고, 말을 타듯 오토바이에 앉아 고단한 하루를 툭 털어놓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그림처럼 자연스러웠다. 흙바닥에 펼쳐진 풀잎 위에는 제법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고, 그 위로 햇빛이 반짝이며 비늘을 쓰다듬고 있었다. 생명은 죽음보다 가까웠고, 오늘은 내일보다 선명했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속엔 이상하리만치 느린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신전은 죽은 자의 집이라면, 여기는 살아 있는 이들의 마당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이 평범한 장면들이 한순간 신전보다 더 숭고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역사가 이곳에 있었고, 누구의 이름도 새겨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시간이 이 길 위에 쌓여 있었다.
그렇게 삶의 풍경을 등에 지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신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이른 오후, 나는 메르넵타의 장제전 앞에 섰다. 주변은 고요했다. 자동차 소리도, 관광객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 마치 흙으로 지은 듯한 집들이 언덕 중턱에 흩어져 있었고, 그 뒤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듯 멈추어 그 풍경을 눈으로 새겼다. 신전 정문에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정말 파라오의 신전이 맞을까?
사방을 둘러보아도, 화려함은커녕 웅장함조차 없었다. 입구 양 옆으로는 부서진 조각들이 허리 높이쯤 되는 벽돌에 올려져 있고, 그 너머에는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평평한 폐허만이 펼쳐졌다. 바닥엔 잡초조차 거의 없었고, 허공을 가르는 바람도 어디론가 미끄러져 사라졌다. 나는 조금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진 속에 담긴 그 벽돌 단들, 무너진 채 놓여 있는 석재들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용도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신전과는 너무도 달랐다. 루크소르 신전이나 라메세움의 기둥숲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구조물도 없고, 하셉수트의 장제전처럼 테라스식의 설계미도 없었다. 오히려 이곳은 잊힌 것들만 남아 있는 자리처럼 보였다. 나는 안내문 하나 없이 방치된 듯한 이 신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메르넵타, 그 이름은 거창한데...”
람세스 2세의 아들이자, 히타이트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후계자. 그가 얼마나 자기 시대에 명예를 갈망했는지, 얼마나 아버지와는 다른 이름을 남기고 싶었는지는 이곳에 와서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신전은 하루에 고작 한두 팀만이 찾아오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사진에 담긴 장면들처럼, 마치 복원되다 만 채로 멈춘 공사 현장 같기도 하고, 역사의 발자국이 아닌 지워진 흔적만이 남은 듯한 폐허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초라함 속에 오래 서 있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사색을 부추겼다. 무너진 기둥 위로 올라간 햇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놓인 석조들,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깊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워진 자의 이름은 무엇으로 남는 걸까?”
그런 물음들을 가슴 한편에 남긴 채, 나는 천천히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폐허 속, 유일한 관람자는 나 한 사람이었다.
신전의 중심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언뜻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돌의 표면을 찬찬히 바라보면, 사라지기 직전의 부조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돌은 놀랍게도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메르넵타.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돌에 남기고 있었다.
그가 세운 주석비(stela)는 지금도 꿋꿋이 서 있다. 부드럽게 깎인 반원형의 상단에는 신 앞에 선 왕의 형상이, 그 아래에는 빼곡한 히에로글리프들이 새겨져 있다. 말없이 이 석비 앞에 서 있자니, 마치 파라오 메르넵타가 나를 불러 세워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는 이겼노라. 리비아를 무찔렀고, 해양 민족의 위협을 물리쳤으며, 나의 이름을 적들은 공포로 기억하였노라.”
그의 목소리는 강했고, 단호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놓지 않으려 했던 자존심의 외침 같았다.
그중에서도 한 구절은 세계사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바로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의 씨는 더 이상 없다”는 문장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기원전 13세기경, 아직 왕국이 세워지기 전 팔레스타인 고지대 어딘가에 살던 한 무리의 이름이, 이집트 왕의 승전 기록 속에서 그렇게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이 표현은, 당시 이집트가 얼마나 광범위한 지역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한 민족의 이름이 ‘패배한 자’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메르넵타가 승리의 선언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명확한 메시지를 암시한다 — “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라고.
그러나 그 석비를 둘러싼 풍경은 한없이 쓸쓸하다. 기단 위에 올려진 크고 작은 석재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을 뿐, 장대한 기둥이나 웅장한 벽화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벽돌로 쌓은 받침 위에 놓인 수많은 돌조각들이 이 신전의 진짜 이야기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조각에는 신에게 제물 바치는 손이, 또 다른 조각에는 군사들의 행렬이 어렴풋이 보인다. 거의 지워질 듯 희미한 선들 속에서도, 이 조각들이 말하려는 메시지는 오히려 더욱 뚜렷해진다.
나는 그 작은 석비들을 천천히 하나씩 따라가며 바라보았다. 어떤 것은 손가락이 닿는 높이에 있었고, 어떤 것은 땅 가까이에 있어 자세를 낮춰야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 돌 하나하나는 마치 메르넵타가 흩뿌린 마지막 기도문처럼 느껴졌다.
“신이시여, 나의 승리를 기억하소서. 나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그는 과연 이 석비들을 통해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후세를 향한 자랑이었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도 잊히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이 돌들에 새긴 것은 단지 정복의 기억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었노라’는 증거였고, 흔들리던 시대 속에서 자신이 여전히 왕이라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으리라. 메르넵타는 확실히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람세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시대는 더 이상 절대왕권의 시대가 아니었다. 제국은 흔들리고 있었고, 북쪽에서는 해양 민족의 침입이 있었으며, 남쪽에서는 누비아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영광을 딛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석비 앞에 섰다. 돌에 새긴 그의 말들이 오늘 이 순간에도 낯선 이방인을 붙잡는다. 나를 붙잡고, 나를 한참 동안 머무르게 했다. 그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정복을 통해 다스렸을지 모르나, 이 돌들을 통해 남기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그리도 인간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잊히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몸부림. 나도 언젠가 무너질 운명을 알면서도, 지금을 살아내기 위해 무엇인가를 붙잡는 사람처럼.
돌은 말을 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서 있기에 결국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돌 앞에 선 사람들은, 그 말에 가만히 귀 기울이게 된다.
“정말 여기가 신전이 맞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너무 조용했다. 어느 유적지에서나 들려오던 안내원의 목소리도, 삼각대를 든 관광객의 카메라 셔터 소리도,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짓밟힌 먼지와 흙, 그리고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누군가 오래전 이곳을 조용히 떠나간 뒤, 시간이 걸음을 멈춘 듯했다.
멀찍이 보이는 두 개의 거대한 석상이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몸통은 남아 있지만, 팔은 부서졌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깎여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쓰러진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나는 그 앞에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아직도 이 신전을 지키고 있는 건가요?"
그렇게 묻고 싶었다.
돌아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복원된 기단 위에 얹힌 수많은 파편들이었다. 이름 모를 돌조각, 문이었을까 싶은 직사각형의 기둥, 한때 누군가 머물렀을 제단자리 같기도 한 원형 기단들. 무엇에 쓰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제 기능을 했던 것들이었다. 나는 천천히 복도처럼 보이는 진흙벽돌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의 양옆에는 무너진 벽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끝에서 나는 또 다른 ‘조용한 공간’을 마주했다.
누군가 이 방에서 기도했을까. 혹은 기록을 남겼을까. 아니면, 파라오의 명을 받아 축제나 제사의 준비를 했던 곳이었을까. 지금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 안에 무엇인가 ‘살아 있었던’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아주 선명했다. 이 신전은 죽지 않았다. 무너졌을 뿐이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파편일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없었다.
그날 나는 혼자였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였기에 더 또렷하게 들려온 고대의 숨결이 있었다. 벽돌 사이로 스며든 시간, 돌조각에 묻은 땀방울, 사라진 왕국의 마지막 흔적들. 그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리는 작았지만, 결코 미약하지 않았다.
“나는 잊히지 않았다. 기억하라. 누군가 다시 돌아오리라.”
돌아서는 길목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석상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등지고 선 그들의 뒷모습은, 묘하게 인간적이었다. 패배했지만, 끝내 등을 보이지 않은 존재들. 고대의 위엄은 결코 크기나 웅장함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이런 부서진 파편들 속에서 더 깊고 오래된 영혼이 들려왔다.
바로, 메르넵타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메르넵타장제전 #룩소르서안 #이집트유적기행 #신전과일상 #돌에새긴기억 #파라오의침묵 #초라한영원의자리 #메르넵타석비 #이스라엘첫등장 #고대이집트사 #람세스2세아들 #무너진영광 #폐허속숨결 #고요한사색의시간 #이집트역사기행 #유적이주는물음 #기억과망각 #이집트석비기행 #왕이남긴말 #부서진기억들 #잊힌신전의말 #이집트의햇살 #돌이말하는시간 #황폐해진영광 #메르넵타의속삭임 #고대와현대사이 #룩소르기행수필 #누가기억하는가 #신전보다숭고한마당 #조용한기록자의길